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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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내 머릿속의 계산기

2019-07-04 (목) 김영숙(실리콘밸리한국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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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사용을 보면 그 사람의 가치관이 보인다. 팟캐스트, ‘영수증’에서도 영수증과 가계부를 통해 사람들의 소비 심리와 지출 문제점을 파악하며 크게 인기를 얻었고 나 또한 많은 공감을 하며 들었었다. 소비 성향을 보면 그 사람이 가치를 두는 것과 합리적이지 못한 생활방식이 여실히 드러난다.

올해 초부터 우리 아이들에게도 드디어 용돈을 주기 시작했고 용돈 사용 내역을 기록하게 했다. 그 결과는 꽤 흥미로웠다. 첫째의 경우, 고교 여학생이라 늘 사고 싶은 항목들이 넘쳐났고 자신의 옷이나 액세서리, 음반 등을 사는 것에 용돈을 모두 지출했으며 그 액수가 늘 모자랐다. 둘째인 중학생 아들은 지출이 거의 없는 반면에 여윳돈이 생기면 누나 혹은 친구들에게 이유를 묻지 않고 돈을 빌려주기 시작했다. 그리고 용돈의 사용에 대한 특별한 계획도 없었다. 두 아이 모두 처음 생긴 돈인지라 어디에 어떻게 써야 할지 헷갈려 했고, 그동안 물건을 직접 살 기회가 없었기에 더욱이 경제 개념이 있을 리가 없었다. 우스운 일이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산타 할아버지에게 고액의 물건을 의지하던 철없고 순수한 아이들이다. 그래도 딸 아이에게는 꼭 필요한 경우를 위해 비상금을 남겨야 한다는 것을, 그리고 아들에게는 돈의 출처, 즉 용돈은 공짜로 주어진 돈이 아니라 아빠 월급의 일부라는 점을 강조해서 좀 더 신중하게 소비하고 남은 돈을 관리하도록 잘 단도리해두었다.

지금 가계부 옆에 수북이 쌓여있는 이번 달 영수증들을 보니 내 삶의 모습도 여실히 드러난다. 여름 방학은 평소와 달리 뜻밖의 지출들이 많았다. 여름 캠프와 과외비도 예상외로 추가되었고, 휴가 비용과 한국 방문 계획 등으로 늘 온라인 계좌를 확인하고 지출에 예민하게 되었다. 나의 생활비는 학창시절에 상상도 못했을 만큼 늘었건만 옛날이나 지금이나 가계부는 크게 달라진 것이 없다. 아직도 현실에서 허우적거리고 이기심과 타협하느라 실랑이다. 나에게는 합리적인 소비를 위한 계산기를 사용하더라도 다른 사람들을 위해 돈을 사용할 때만이라도 머릿속의 계산기를 사용해서 지출을 늘리고 싶다. 아이들의 과외비를 줄여서 부모님 용돈도 한번씩 보내 드리고, 불필요한 외식을 줄여서 조용히 고민 많은 친구들을 따로 만나서 밥 한 끼 기분좋게 대접하면 의미있고 멋있지 않을까? 받는데 익숙하던 삶에서 이제 베풀며 만족할 수 있는 삶으로 변화되기를 기대해본다.

<김영숙(실리콘밸리한국학교 교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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