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재진 국제개발금융 투자담당
얼마 전 토요일 밤 U-20 월드컵 결승전이 열렸다. 한국에서는 흥분 되는 밤이었다. 개인적으로 유럽 프리미어리그나 K-리그를 챙겨보는 축구 광팬은 아니지만, 한-일전 그리고 월드컵 중 한국이 뛰는 경기는 놓치지 않고 즐겨 보는 편이다.
사실 U-20 월드컵이란 20세 미만 틴에이저들의 월드컵이라는 사실도 몰랐다. 그런데 한국 사무소에 파견돼 서울에 살면서 한국의 응원 열기와 경기 소식을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다.
경기 성적이 안 좋았다면 관심도 없었겠지만, 우리나라 국민들이 가장 예민하게 반응하는 한-일전 승리로 시작해 햇병아리 같은 고등학생, 대학 신입생들이 예상 밖의 실력을 보여주니 온통 나라가 들썩였다. 우리 민족의 결집력이 무색하지 않게 붉은 악마들이 월드컵 경기장을 채우고 시청 앞 광장을 메우는 뜨거운 밤이었다.
결국 우크라이나에 패하고 월드컵 U-20의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지만 한국은 이제 어디에도 뒤떨어지지 않는 나라가 되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인지하는 순간이었다.
30대 후반에 접어든 나는 아직도 처음 유학 갔었던 1997년을 기억하고 있다. 지리 교과서에 대한민국이 ‘개발도상국’이라고 소개된 사실에 흥분했지만 그게 당시 한국의 현실이었다. 이어 이듬해 터진 IMF 사태로 인해 한국은 치욕적인 구제금융을 감수해야했지만 4년 후 2002년 월드컵을 개최하면서 다시 도약하는 대한민국의 힘을 보여주었다.
당시 4강 진출 신화를 이루었어도 해외언론은 주심에게 “바친” 뇌물의 결과가 아니냐며 비아냥거리고 한국을 중국과 일본 사이 어딘가에 있는 작은 아시아 국가라고만 여겼었다.
그 때만 해도 한국을 찾는 외국인들은 주로 외교관, 회사 파견 주재원, 한국에 관심 있는 ‘유별난’ 외국인, 아니면 고작해야 서울을 경유하느라 방문하는 이들이었다. 그러나 2018년 기준 한국의 외국인 방문객 수는 1,50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2003년 이후 4배 정도가 되는 수치이다.
단순히 숫자가 증가했다는 것과 글로벌화에 따라 잦아진 해외여행 때문이라기보다는 방문하는 사람들의 목적이 현저히 달라진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제는 그저 일 때문에 방문하는 이들에 그치지 않고 한국문화에 진심으로 관심을 가지고, 한국음식을 진정으로 즐기고, 한국어를 유창하게 배우고 싶어 하는 이들이 찾아오고 있다.
이게 과연 싸이 열풍인지, BTS (방탄소년단) 열풍인지는 논쟁해 볼만한 주제겠지만 결과적으로 한국이 이뤄낸 이런 위상을 결코 당연하게 받아들여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갖고 있는 특유의 ‘정’, 감칠 맛 나는 고유의 ‘맛’, 음악만 나와도 어깨를 들썩이는 ‘흥’이 외국인들을 한국으로 끌어당기는 매력이 될 것이다. 하지만 우리 2030 세대는 지금의 위상을 갖게 해준 윗세대의 노력을 기억해야 하겠다.
과거에는 해외에 나가면 공공장소에서 우리끼리 한국말을 하면 민폐가 될까 조심스럽게 소근 소근 대화를 했고, 이웃에 김치 냄새가 날까봐 김치를 제대로 먹지도 못하던 시절이 있었다. 이제는 길거리에서 한국말을 하면 오히려 “Are you Korean?” 이라는 반가운 호기심 어린 질문을 받는가 하면 김치가 수퍼푸드로 등극되어 홀푸즈에서도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이런 시절을 사는 우리 2030 세대는 정말로 복 받은 세대인 것이 분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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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진 국제개발금융 투자담당>