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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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아름답지 않은 것들도 기억할 용기

2019-06-29 (토) 신선영(UC버클리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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점심시간 샌프란 페리 마켓에 앉아 있으면서 있었던 일이다. 신호등 건너편에서 꽃 모자를 쓰신 호호 할머니께서 걸어오셨다. 그리고는 “한국에서 왔구나?” 하며 말씀을 걸어오셨다. 할머니는 우리가 완벽한 초면이라는 사실을 알기는 하시는지 조금의 민망한 기색도 없이 자랑 한 스푼 섞은 투정을 늘어놓기 시작하셨다. 요 앞 커피숍에서 일하는 종업원이 할머니께 인종 비하적 발언을 해서 굉장히 기분 나쁘셨던 모양인데 이야기의 요점은 변호사 되는 아들과 미국 각지 저명한 회사에 취직해 있는 손자들과 조카들이 있기 때문에 조금도 위축되지 않으셨다는 것이다. 어른들의 자식 자랑에는 이미 도가 튼 나는 “얼마나 든든하시냐, 이제 얼씬도 못 하겠겠다” 등 큰 의미 없는 반응을 보이며 이야기를 들어드렸다. 웃고 있는 내 모습을 보며 금세 가까워졌다고 느끼셨는지 할머니는 조금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하셨다.

젊은 나이에 월남전쟁에서 전사한 남편분 이야기였는데 꼬깃꼬깃 접혀 있는 종이에 적어놓은 할아버지 성함을 보여주시면서 여기 핸드폰에도 나올 거라고 검색해보라고 하셨다. 할머니가 보여준 종이는 여러 번 접혔다 펴진 주름이 가득했다. 그 세월이 눈에 들어왔을 때가 되서야 나는 이 할머니를 그저 지나가다 마주친 프로자랑러 정도로 내 기억 속에서 지워버리지는 않겠구나 깨닫았던 것 같다. 할머니는 결혼한 지 채 얼마 되지 않아 22살 꽃다운 나이에 과부가 되었고 어린아이와 함께 미국으로 이민 와 지금까지 살고 계시다고 했다.

이런 이야기 외에도 할머니는 한참이나 한국의 정치사회 역사를 훑을 기세로 당시의 어려움과 어린 시절의 고생을 늘어놓으셨다. 한국에서 그런 아픔을 딛고 이렇게 먼 나라까지 오셨으면 힘들었던 과거는 다 잊고 살아가실 법도 한데 이 먼 땅에서까지 나그네를 세워 두고 불편한 기억을 꺼내 보시는 이유는 무엇일지 감히 짐작할 수 없다. 할머니는 앞서 여러 차례 알려드린 내 이름을 계속해서 곱씹으시며 “또 만나자”라는 인사를 남기고 페리 마켓 안으로 들어가셨다. 그리고 나는 쥐 난 다리를 부여잡고 분주한 샌프란 시내로 다시 향하며 할머니와 한 시간 남짓 함께한 시간을 꼭 기억하겠노라 다짐했다.

<신선영(UC버클리 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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