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둠은 어둠이 아니다

2019-06-24 (월) 최진희 펜실베니아 주립대 성인교육학 박사과정
작게 크게
어둠은 어둠이 아니다

최진희 펜실베니아 주립대 성인교육학 박사과정

지난 몇 년 졸업 연구를 위해 문화인류학적 연구방법으로 북한이 고향인 분들과 함께 한국의 카페와 식당에서 서빙을 했다. 북한이라는 문화와 시스템에서 자란 이들은 무엇을 어떻게 배워갈까? 특별히, 카페나 식당같이 감정노동을 해야 하는 서비스 업무를 통해 무엇을 어떻게 배워가는지 알기 위해 함께 서빙하고 밥 먹고 놀고 청소했다. 그렇게 함께 시간을 보내며 가깝고도 먼 북한에서 온 그들의 삶의 이야기를 담았다.

다양한 연령과 배경의 북한 출신자들과의 만남을 통해서 배운 건 북한에서 내려왔다고 해서 주체사상을 거부하고 자본주의를 받아들이거나, 혹은 어느 한 방향으로 사상과 삶의 방식을 100% 전향한 게 아니었다. 이들은 지금까지 살아온 삶의 방식, 믿음의 체계를 새로운 직업과 환경에 맞게 조절해가며 자기만의 방식을 새롭게 만들어가고 있었다.

한 아주머니는 사회주의에 자부심이 있었다. 노래방을 차린 후 자본주의식 경쟁 상황에서도 ‘팁 통’을 만들어 매일 팁을 공평하게 분배했다. 하지만 동시에 삼대 독재정치를 거부하며 사람을 악랄하게 죽이고도 양심의 가책을 느끼지 못하게 하는 이데올로기의 악함에 격분했다.


고위 간부의 부인으로 넉넉히 살았던 아주머니도 만났다. 항상 뇌물을 받아 그 뇌물을 풀어 주변을 먹이며 함께 살았단다. 온 동네 사람과 집에서 한국 드라마를 보고 가끔 보위부가 오면 뇌물을 풀었으며, 특별히 국군포로의 자녀들은 재산도 교육도 미래도 없어 매일 음식을 챙겨줬다고 한다.

또한 아주머니는 김일성-김정일 시대 경제와 사회변화를 언급하며 질문했다. “한국 사람들은 왜 그렇게 박정희 대통령을 욕해요? 나라를 이 정도로 먹고 살게 했는데 왜 다들 욕만 해요? 북한은 다 굶어 죽었는데도 아직 수령님 하는데…” 아주머니는 공과 실을 구분하지 않는 한국 사람들이 이상하다며 북한의 배고픈 역사로 남한을 해석했다.

한 아저씨는 전 가족이 처형당해 홀로 살았다. 공개처형에서 부서지는 육체들을 보며 삶의 목적을 갈구하다 지금은 목사가 되었다.

하루는 일을 마치고 집에 오는데 지금 내가 서 있는 친밀한 이 거리가 너무나 낯설었다. 감당하기 힘든 삶과 죽음 그 경계에서 ‘현재 진행중’인 이야기에 가슴이 먹먹했다. 무엇보다 그들의 몸과 영혼에 아로새겨진 탈북 이후의 흔적들, 악몽과 귀신이 되어 잠잘 수 없다던 밤의 이야기가 서글펐다. 이후로 데이터를 녹취하고 분석하며, 이데올로기와 분단의 현실 앞에서 선 개인의 삶을 마주할 때마다 나는 무기력해져 울고 분노했고, 기약 없는 우울증이 나를 덮쳤다.

그렇게 긴 어둠의 터널을 거치며 그들의 삶과 내 삶을 분리하는 걸 배울 즈음 남한에서 꽃 피우는 그들의 삶을 보았다. 각인각색 생명력 있게 흐르고 있었다. 한 남편의 부인이 되고 아기엄마가 되어가는 분, 해외에서 전문가 훈련을 받으며 카톡하고 엽서를 보내주는 분, 혹은 목사안수를 받고 미국에 왔다는 분의 뜻밖의 연락을 받을 때, 도리어 고여있는 내 삶이 부끄러웠다.

데이터로 담은 그들의 어둠과 불신의 기억은 과거이고, 그들의 현재는 줄기차게 흐르는데 도리어 나는 그들의 어둠을 붙잡고 나의 시간을 주체하지 못했던 것이다.

최악이 최악이 아니라는 것, 밤이 지나면 새벽이 온다는 걸 어렴풋이 경험한다. 그래서 내가 경험한 조그마한 어둠이 또 다른 어둠을 밝힐 수 있는 초석이 되기를 바란다.

<최진희 펜실베니아 주립대 성인교육학 박사과정>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