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떠나다
2019-06-20 (목)
김영숙(실리콘밸리한국학교 교감)
갑자기 닥친 캘리포니아의 폭염으로 요 며칠 사이 숨이 막혔지만, 아이들과 나는 방학이라는 설렘에 잠시 들떠 있었다. 여행을 떠날 만한 곳을 검색해보고 새로 고친 에어컨에 감사하며 미뤄두었던 책도 읽고 가끔 수영도 하면서 방학을 여유롭게 시작했다. 하지만 그 여유도 잠시였고 참았던 나의 공부 잔소리가 다시 시작되자 딸은 기다렸다는 듯이 한국에 계신 할아버지 댁에 언제 가냐고 아우성이다.
스트레스가 어느 정도 쌓이면 늘 한국이 그리워지고 할아버지와 할머니 댁에 가는 것이 큰 목표가 되고 만다. 시댁도 친청도, 그리고 친척들도 모두 한국에 있다보니 방학이면 가족들이 그리워지는 건 나도 매한가지다. 작년에는 바쁘기도 하고 비용 부담도 커서 남편과 나만 차례로 한국을 방문했더니 딸아이의 불만은 더욱 커졌다.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아이건만 한국에 가야만 충족될 수 있는 가족의 사랑과 에너지는 이 또래 아이들에게는 꼭 필요한 요소인 것 같다. 그런데 우리는 가족들로부터 왜 이렇게 멀리 떠나왔을까.
캘리포니아의 더운 바람이 짙어지면서 내게도 우리 딸이 느끼는 할머니의 사랑처럼 따뜻하고 인정 많았던 이모가 떠올랐다. 결혼하고서도 한국에 가면 가끔 뵈었던 이모인데 몇 년 전 겨울에 돌아가셨다. 이모네는 우리의 고향인 경주에서도 버스를 타고 한참을 더 들어가야 하는 외지고 작은 시골이었다. 그곳은 우리 4남매에게 여름마다 추억을 선물해준 소중한 장소이기도 하다. 엄마보다 열 살 위셨던 이모는 이모라기보다는 내게 외할머니에 가까운 존재였다. 외모도 성격도 엄마와는 달리 수수하고 너그러우셨던 이모는 인정 많고 고마우신 분이셨다. 방학이면 도시에 흩어져 있던 사촌들도 집으로 돌아왔고 경주에 계셨던 외삼촌네까지 합세해서 여름 내내 이모네 집은 손님들로 북적였다.
이번에 한국 방문을 계획하면서 아이들의 농촌 체험과 휴양 마을을 찾다보니 그 농촌의 풍경 속에 오빠들을 따라 산과 들로 곤충을 잡으러 다니던 나의 모습이 있었다. 개울가에 발을 담그고 물고기를 잡던 모습도 떠올랐고 시원한 그늘에서 과일을 먹던 기억도, 염소를 몰며 앞장서던 사촌오빠를 따라 해질 무렵이면 집으로 돌아왔던 기억이 어렴풋이 났다. 식사 때마다 가득했던 상들, 그리고 상마다 둘러앉았던 가족들과 다시 모두 둘러앉아 밤늦도록 이야기하고 싶다. 이제는 30년도 더 된 기억 속에서만 만날 수 있는, 지금은 함께할 수 없는 떠난 가족들이 못내 그립다.
<김영숙(실리콘밸리한국학교 교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