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빠들은 어디 있나

2019-06-14 (금) 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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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폴레옹이 죽은 전투는?” - 그의 마지막 전투. “독립선언서가 서명된 장소는?” - 페이지 맨 아래. “이혼하는 주된 이유는?” - 결혼. ‘F’ 받은 답안지 사진이 한 인터넷매체 사이트에 올랐다. 시험지를 채점하던 교사가 혼자 보기 아까워서 올렸을 것이다.

요즘 미국 정치권의 핫이슈로 떠오른 낙태를 시험문제로 낸다면 이 학생은 어떤 답을 썼을까? “낙태를 하는 주된 이유는? - 임신. 임신을 하는 이유는? - 성관계”가 될 것이다. 후자 없이 전자가 발생할 수 없기 때문이다.

임신은 남성과 여성 두 사람이 함께할 때에 한해 가능하다. ‘동정녀 마리아’를 제외한 이 세상의 모든 여성은 혼자 힘으로 임신을 할 수가 없다. 낙태를 범죄로 처벌한다면 범죄의 원인인 임신은 2인1조 공범의 소행, 공범자 두 사람이 공히 처벌을 받아야 마땅할 것이다.


임신은 남녀가 이뤄내는 결과이지만 그 결과인 생명은 한 사람, 여성만이 품는 것은 자연의 섭리일 것이다. 임신 중인 9개월 그리고 아기가 태어난 후 몇 년, 엄마와 아기는 보호가 필요하다. 몸이 자유로운 한사람, 아빠가 필요한 이유이다. 남녀가 사랑해서 결혼하고, 임신하고, 출산해 가족을 이루는 정상적인 과정에서 이런 역할분담은 자연스럽다.

하지만 사랑, 결혼, 임신의 과정 중 어느 하나 삐끗하면 사정은 복잡해진다. 사랑 없이 성폭행에 의한 임신, 사랑은 있지만 너무 어린 나이에 닥친 미혼의 임신, 결혼이 불가한 근친상간에 의한 임신 등 세상에는 축하하지 못할 임신들이 많다. 이런 경우 임신을 중절하는 것이 옳은가에 대한 찬반대립이 낙태를 둘러싼 가장 어렵고 치열한 논쟁이다.

그리고 이런 사연 많은 임신일수록 남성은 보이지 않는 것이 특징이다. 태생적으로 몸이 자유로운 남성은 ‘나 몰라라’ 자취를 감추고 ‘주홍 글씨’를 몸에 안은 여성은 혼자 불안과 두려움, 죄책감에 짓눌리는 것이 가부장 전통 남성중심 사회의 풍경이다.

19세기 미국의 1세대 여성운동가들이 목숨 걸고 추구했던 여성의 낙태권리는 1973년 연방대법원 판결로 합법화했다. 그럼에도 찬반 논쟁은 끊임없이 이어져왔다. 논쟁의 핵심은 여성의 자기결정권과 태아의 생명권. 임신?출산과 관련해 여성은 스스로 결정할 권리를 갖는다는 입장과 임신되는 순간 태아는 한 생명으로서 보호받아야 한다는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주로 민주당은 여성의 선택권(pro-choice), 공화당은 태아의 생명권(pro-life)을 지지하지만 양 진영이 합의하는 완충지대가 있다. 강간이나 근친상간 임신에 대해서는 낙태를 허용한다는 예외조항이다. 아무리 태아의 생명이 소중하다고 해도 강간 피해자에게 강간범의 아이를 낳아 키우라고 강요하는 것은 너무도 잔인하기 때문이다.

낙태 반대와 지지가 공존하던 당내 의견을 통일해 공화당을 ‘생명권의 당’으로 만든 로널드 레이건도 강간과 근친상간 임신에 대해서는 예외적용을 지지했다.

최근 갑자기 불어 닥친 낙태반대 물결은 그 극단성으로 예사롭지 않다. 지난 5월말 제정된 앨라배마의 낙태 금지법이 대표적이다. 임신부의 건강이 심각하게 위험한 경우만 제외, 성폭행이나 근친상간 임신에 대해서도 낙태가 금지된다. 모든 낙태는 중범죄로 분류돼 시술 의사는 최고 99년 징역형, 말하자면 종신형에 처해진다. 강간당한 여성이 낙태를 할 경우 의사는 강간범보다 무거운 형을 받게 된다.


그 외 조지아, 켄터키, 미시시피, 루이지애나, 미주리, 오하이오 등 6개 주가 태아 심장박동이 인지되는 임신 6주 기준 그 이후의 낙태를 금지하는 등 강력한 낙태금지법안들을 통과 시켰다. 임신 6주라면 대부분 여성들이 임신 사실을 알지도 못하는 초기, 사실상 낙태 전면금지이다.

왜 갑자기 이런 극단적 낙태금지법들이 등장하는 걸까? 이 사회의 양극화와 무관하지 않다. 진보와 보수, 민주와 공화로 갈라져 극과 극으로 치닫는 현상의 한 단면이다. 지난해 트럼프의 지명으로 브랫 캐버너가 합류하면서 연방대법이 보수 쪽으로 완전히 기울자 공화당 주들이 이참에 1973년 로우 대 웨이드 판결을 뒤집으려고 나선 것이다.

이민, 기후 등 이슈에서 극단으로 나가는 공화당이 낙태도 극단으로 밀고 나감으로써 공화당표밭을 결집시키려는 시도이다. 내년 2020 대선을 겨냥한 것이다. 반면 20여명 민주당 대선 경선후보들이 여성의 낙태권리 지지에 목소리를 높이는 것도 같은 배경이다.

태아의 생명권도 중요하고 여성의 자기 결정권도 중요하다. 어느 쪽을 우선하느냐는 개별적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모든 임신은 다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는 낙태 논쟁의 무대에 남성을 불러들일 때가 되었다. 낙태금지로 여성을 벼랑 끝으로 내몬다고 생명존중이 실현되지 않는다. 임신 순간부터 태아가 인간이라면 이에 동참한 남성은 이미 아빠이다. 아빠로서의 책임을 묻는 법이 도입된다면, 그래서 남성이 책임 있게 행동한다면 낙태는 많이 줄어들 것이다. 임신과 낙태는 여성만의 이슈가 아니다.

<권정희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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