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최저임금엔 사람이 있다

2019-06-12 (수) 남상욱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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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마태복음’에 따르면 예수는 ‘천국’이라 불리는 ‘하나님 나라’를 일꾼을 부리는 포도원에 비유한 적이 있다. 포도원 주인은 하루 품삯으로 한 데나리온을 주기로 하고 이른 아침에 일꾼들을 모아 포도원에서 일을 시켰다. 아침 아홉 시, 다시 열두 시, 오후 세 시쯤 포도원 주인은 공터에 나가 일꾼을 불러 모아 일을 시켰다. 심지어 오후 다섯 시에도 일꾼을 고용해 일을 시켰다.

문제는 품삯을 지급할 때 생겼다. 이른 아침에 와서 일한 일꾼에게도 1데나리온, 일이 끝날 쯤에 온 일꾼들에게도 똑같은 품삯이 지급됐던 것이다. “더 받아야 한다”는 하루 종일 수고한 일꾼들의 항변에 포도원 주인은 마지막 사람에게도 똑같이 주는 것이 자신의 뜻이라며 이를 일축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품삯 즉 ‘최저임금’은 늘 뜨거운 감자임에 틀림없다.


LA시와 카운티의 최저임금은 7월1일부터 인상된다. 25인 이하 업체의 최저임금은 현행 12달러에서 1.25달러가 인상된 13.25달러, 26인 이상 업체는 13.25달러에서 14.25달러로 1달러가 인상된다.

한달이 채 남지 않은 상황이지만 최저임금 인상을 놓고 한인 경제계 특히 영세업체를 중심으로 민감한 반응들이 나오고 있다. 그만큼 추가 인건비 부담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최저임금 인상분 만큼 제품이나 서비스에 대한 가격을 올릴 수도 없는 입장이다.

받는 임금노동자들도 최저임금 인상 자체는 환영하지만 즐겁지만은 않다. LA의 렌트비를 포함한 각종 생활비가 급증하면서 1달러 정도씩 오르는 최저임금으로 생활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혹시나 있을지도 모를 해직 통보에 늘 불안한 마음이다.

하지만 최저임금은 그야말로 최저 수준을 의미한다. ‘임금노동과 자본’에서 마르크스는 임금은 임금 노동자의 ‘노동력’의 대가이며 최소치라고 주장했다. 그런 점에서 최저임금은 이익을 내는 업주들이 지켜야 할 최소한의 사회·경제적 의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하나님 나라’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일을 더 많이 했으니 더 많은 임금과 더 나은 대우를 요구했던 이른 아침부터 일한 일꾼들에게 포도원 주인이 “꼴찌가 첫째 되고, 첫째들이 꼴찌가 될 것이다”라고 말한 의미는 뭘까?

아마도 성경 대로라면 천국인 ‘하나님 나라’에서의 가치는 우리가 몸담고 있는 자본주의적 가치와는 다른 것이리라. 노동의 시간이나 강도에 따라 차별 대우가 존재하지 않는 곳이 하나님 나라인 셈이다. 그곳엔 오직 사람만이 중요할 뿐이다.

우리가 천국의 존재를 믿는다면 그래서 최저임금을 논한다면 빠져선 안되는 것이 하나 있다. 바로 사람이다. 최저임금엔 사람이 있다.

<남상욱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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