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증오범죄, 가만 있으면 안 된다

2024-03-13 (수) 황의경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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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아시안 커뮤니티를 대상으로 법률적인 문제를 도와주는 비영리단체 주최로 한인 언론인들을 초대한 자리에 참석했다. 실제 한인들이 겪는 고충을 가장 가까이서 보고 듣는 취재 담당자들에게 그들이 가장 필요한 서비스가 무엇일까에 대해 의견을 묻는 자리였다.

단체 관계자는 주택퇴거 문제, 노인학대 문제, 신분문제, 노동법 문제, 가정폭력 등 여러 가지 사안을 설명하면서 자신들이 나아갈 방향에 대해 묻고 답했다. 가만히 경청하며 발표자들의 의견을 듣던 나는 대화의 주제가 아시안 증오범죄로 넘어간 순간부터 말이 많아졌다. 기자가 아닌 증오범죄를 직접 겪었던 피해자로서 말이다.

2022년 어느 여름날 나는 LA 한인타운에서 증오범죄와 함께 집단 폭행 피해를 당한 적이 있다. 야심한 새벽시간 집앞 골목에서 이웃의 고성방가가 긴 시간 이어졌고, 참지 못하고 창문에 서서 조용히 해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나의 출신국가와 성별을 들먹이며 조롱했다. 지역 경찰서 전화번호를 찾아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조롱이 도를 넘자 남편은 그러지 말고 대화를 하자며 집을 나섰다. 술에 취한 그들은 욕을 퍼부으며 남편을 먼저 때렸고 남편이 폭행당하는 모습을 보고 남편을 도우러 나간 나에게도 폭행을 가했다. 온 가족이 모여있던 그들의 숫자는 20명이 훌쩍 넘었고 우린 단 둘이었다.


폭행을 당하며 경찰을 불러달라 울부짖었다. 목격자 중 한명이 경찰에게 전화를 했고 경찰이 현장에 도착하자 가해자들은 모두 집 안으로 숨어들어 불을 껐다. 우리 부부는 입과 코에서 피를 흘리며 경찰에게 피해 상황을 진술했지만 경찰은 가해자들에게 아무런 제재도 가하지 않고 그냥 가버렸다.

굳건하게 믿었던 공권력이 아무것도 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깨닫게 되자 패닉이 왔다. 우리가 다시 두들겨 맞아도 경찰이 도와주지 않을 것이라는 공포감은 생각보다 컸다. 우리는 도망치듯 이사했다. 사건이 일어나고 두 달 정도 후 경찰서에서 우리를 불렀다. 우리는 그들이 뱉었던 모욕적인 말들을 진술하며 증오범죄를 주장했지만 담당 형사는 증오범죄가 아니라고 판단했다. 수사당국은 우리 쪽 목격자도, 우리가 제출한 동영상도, 우리의 진술도 모두 무시하고 증거불충분이라며 케이스를 종료시켰다.

얼마전 기자 선배와 가진 점심식사 자리에서 이민자들이 겪는 정신적 충격에 대한 대화를 한 적이 있다. 태어나서 살던 곳이 아닌 전혀 다른 세상으로 이주해 느끼는 터부 같은 것 말이다. 내가 소속돼있다고 믿었던 이 사회가 나를 밀어내는 것 같을 때 느끼는 상처, 이민자로서 내가 겪었던 가장 큰 정신적 충격은 아마 앞서 얘기한 사건일 것이다.

지난해 말 워싱턴 DC에서 길을 걷던 한인 남성 이모씨는 괴한에 의해 기절할 정도로 목이 졸리고 폭행을 당해 경찰에 신고했지만 경찰은 별다른 대처를 하지 않았다. 보다 못한 피해자가 직접 인근의 감시 카메라를 확인해 용의자를 확인했지만 경찰은 사실상 체포는 불가능할 것이라는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증오범죄에 대한 사회적 인식은 날로 높아지고 있지만 ‘아시안’ 증오범죄에 대한 처벌 법규는 여전히 미비한 수준이다.

내가 속해 있는 이 사회가 공평한 잣대로 범죄를 다뤄주길 희망한다. 피해자가 백인이어서 흑인이어서 아시안이어서 결과가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가해자가 행한 행위에 대한 책임을 동일하게 지게 하는 그런 사회 말이다. 그런 세상을 만드는 것은 결국 우리가 되어야 한다. 피해를 당했을 때 아프다고 크게 울고 반항해야 한다. 밟혔을 때 크게 꿈틀거려야 한다. 우리의 꿈틀거림이 커질수록 이 땅에서 뿌리내려 살아갈 후손들의 삶이 조금이라도 편해진다는 것을 잊으면 안 된다.

<황의경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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