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루프탑 코리안’ 정치적 오용의 위험

2025-07-01 (화) 12:00:00 한형석 사회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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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6월9일, LA에서 이민 단속에 항의하는 시위가 이어진 가운데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의 장남이자 인플루언서인 도널드 트럼프 주니어가 소셜미디어(SNS)에 한 게시물을 올렸다. 메시지는 간결했지만, 그 파장은 복잡하고도 심각했다.

“루프탑 코리안을 다시 위대하게(Make Rooftop Koreans Great Again!)”라는 문구와 함께 한인으로 추정되는 인물이 건물 옥상에서 총기를 손질하는 장면이 담긴 이미지가 첨부됐다. 상단에는 ‘한인들이 옥상에 오르자 폭동이 멈췄다’는 취지의 문구도 있었다. ‘루프탑 코리안’은 1992년 LA 폭동 당시 한인타운을 지키기 위해 무장한 채 자경단을 조직했던 한인들을 가리키는 표현이다. 트럼프 주니어가 올린 사진도 그러한 한인의 모습이었다.

당시 LA 한인 업소들은 폭도들의 표적이 되어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경찰과 시 당국이 사실상 한인타운을 방기하면서 한인들은 스스로 총기를 들고 옥상에 올라야만 했다. 이들은 ‘영웅’이 아니라 국가로부터 버림받은 소수자로서의 생존자였다.


그러나 트럼프 주니어의 게시물은 최근 항의 시위에 대한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한 대응을 정당화하려는 의도로 읽혔다. 그는 해당 게시물 이전에도 SNS에 “언론이 ‘평화로운 시위’라고 표현하는 것을 믿을 수 없다”며 “외국 침략자들이 자국 국기를 흔드는 폭동”이라고 주장한 바 있다. 즉, 이민 단속 항의 시위에 대해 과잉 대응이라는 비판이 제기되던 상황 속에서, 33년 전 LA 폭동을 끌어와 현재의 시위를 빗대고, 자경단으로 대응했던 ‘루프탑 코리안’을 치켜세운 것이었다.

생존을 위한 방어의 이미지를 마치 폭동 진압의 상징, 무장 대응의 모델, 혹은 질서 회복의 영웅적 비유로 소비한 셈이다. 이는 역사적 배경을 뒤틀고 목적을 전도하는 행위이자, 차별과 생존의 역사를 정치적 레토릭으로 활용해 한인 이민사의 가장 깊은 집단적 트라우마를 다시 건드린 행위였다.

이외에도 해당 게시물은 여러 면에서 부적절했다. 일단 최근의 이민 단속 항의 시위와 1992년 LA 폭동은 비교 가능한 사건이 아니었다. 폭력의 정도와 피해 규모는 물론이고, 발생 배경과 성격 역시 전혀 다르다. 그럼에도 양자를 의도적으로 동일시한 것은 역사적 왜곡이라 볼 수 있다. 뉴욕타임스(NYT) 등도 이번 시위와 LA 폭동은 혼란의 수준이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 게시물이 시위 현장에서 회자될 경우, 시위대를 자극할 수 있었다. 또한 사진 속 인물은 실존 인물이며, 사전 동의 없이 그 이미지를 정치적 목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인격권 침해로 이어질 수 있다. 게다가 해당 사진이 실제 촬영 의도와 전혀 다른 맥락에서 활용되었다면 그 자체로도 심각한 문제가 된다. 실제로 사진의 촬영자인 강형원 기자는 “맥락 없이, 그것도 제 허락 없이 왜곡해 사용했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했다.

더 큰 문제는 여전히 타인종 사회에서는 ‘루프탑 코리안’의 역사와 배경에 대한 인식이 낮은 상황에서, 영향력 있는 인플루언서가 올린 게시물이 단순한 ‘밈(meme)’처럼 소비되고, 이번 사건이 하나의 해프닝으로 치부될 경우, 좋지 않은 파급 효과를 낳을 수 있다는 점이다. 예컨대 이로 인해 한인사회는 의도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마치 무력 대응을 지지하는 집단, 혹은 시위대의 적대 세력처럼 오인될 가능성이 있다. 나아가 아시아계 전체의 이미지까지 왜곡될 수 있다.

특히 SNS를 통해 이미지가 밈화(memeification)되면, 집단의 고통과 역사적 맥락이 지워지고 단순 소비의 대상이 된다. 피해자의 서사는 희화화되고, 오히려 가해자나 폭력 지향적 집단처럼 인식될 수 있다. 일부에서는 이로 인해 한인사회가 해당 이미지를 정치적으로 수용한다는 식의 오해까지 불거질 수 있다.

<한형석 사회부 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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