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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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필마당] 사노라면

2019-06-12 (수) 김옥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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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한달전 남편의 막내 여동생인 샌디가 이곳 베이지역에 제 남편과 딸까지 동행해서 일주일간 다녀갔다. 11년 만의 재회였다. 우리가 그들을 마지막 본 것은 시어머니의 장례식에서였다.

미국에서 형제들이 각기 타주에 살면 자주 만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한국과 달리 이곳 미국 땅은 너무 넓기 때문이다.

우리 큰 시누이는 같은 베이지역에 살아도 일년에 두세번 보는 것이 보통이다. 남편에겐 세명의 시누이가 있는데, 막내가 고향인 웨스트 버지니아에 살고, 둘째 시누이는 애틀란타에 살고 있다. 샌디의 남편이 의사이고 딸인 린지도 정신과 의사여서 그들이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리는 컨퍼런스에 참석하러 왔기 때문이다.


큰 시누이의 딸인 미셀 집에서 오랜만에 형제 상봉의 잔치를 열었다. 마침 미셀이 결혼 후 처음 집다운 집을 마련해서 하우스 오픈 겸 친척들이 모일 수 있었다. 참 사람들의 운명은 알수가 없다. 작년까지만 해도 미셀 남편의 수입이 변변치 않아 아이들 세명을 데리고 근근히 살았는데 이름이 죤인 미셀의 남편이 친구와 함께 건설 회사를 차린 것이 대박을 맞아 이젠 들어오는 돈이 너무 많아 어쩔줄 모른다고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못살던 사람이 갑자기 잘 살게 되면 보는 사람이 기분이 좋다. 여지껏 제 사촌 동생인 우리 딸을 부러워 했는데 이젠 사정이 뒤바뀐 것이다. 그 집 앞에 새로 산 좋은 차들이 보란듯이 세워져 있었다. 물론 우리들은 미셀을 축하하는 덕담을 주고 받았다.

한 집안에 의사와 변호사가 있으면 더할 나위 없다는 말이 있다. 요즘엔 컴퓨터 프로그래머까지 있어야 제대로 갖추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막내 샌디가 이제 칠십이 되었으니 형제들이 모두 너무 늙어버렸다. 큰 시누인 도로레스와 샌디는 내 남편의 갑작스런 건강 악화로 이젠 뒤뚱뒤뚱 걷는 그 모습을 보고 경악했다. 의사인 샌디의 남편이 단의 증상은 어릴 때 걸렸던 소아마비가 다시 재발한 것 같다고 말했다. 소아마비는 말 그대로 다리가 마비되어 걷지 못하게 되는 병이다. 가끔 소수의 사람들에게서 그 병이 수십 년이 지나서 재발한다는 말을 나도 언젠가 들은 적이있다. 이제야 그동안 궁금했던 의문이 풀린 셈이다. 단이 아홉살 때 그 병에 걸려서 집에서 꼼짝을 못하고 있을 때 시어머니가 정성껏 간호를 했다는 얘기를 들었다.

샌디 가족이 떠나기 전 샌프란시스코 휘셔맨 워프에서다시 만나 함께 점심을 먹었다. 샌디 남편이 꼭 바다가 보이는 장소에서 밥을 먹고 싶다고 해서 이곳에 오게 되었다. 나는 샌디가 쓰는 남쪽 사투리 때문에 그녀 말을 잘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의사 남편 덕에 시골에서 몇백 에이커의 땅에 떵떵거리고 살고 있는 그녀 모습은 영락 없는 칸츄리 걸이었다. 진 바지와 진으로 만든 자케트를 입고 머리는 질끈 묶었다. 옛 미국 속담에 소년이 시골집은 떠나도 촌 사람의 모습은 버릴 수 없다는 말이 생각났다. 한 사람의 모습에서 오랫동안 살았던 분위기 라던가 풍기는 냄새는 어쩔수가 없나보다.

이제 삼십오세라는 그들의 딸인 린지는 정신과 의사라는데 예쁘고 상냥했다. 오하이오에 있는 콜럼버스의 한 병원에서 근무한다고 했다. 내 시누이들은 모두 간호원이었다. 인구 3만의 작은 소도시에서 가난한 노동자인 아버지 밑에서 태어난 그들은 이제 좋은 집과 수영장이 딸린 집에서 살고 있다. 어릴 때 수영장이 있는 집에 사는 것이 꿈이었던 그들은 모두 자신의 소원을 이룬 셈이다.

떠나기 전 나는 샌디의 모습에서 이제는 고인이 된 시어머니의 모습을 언뜻 보았다. 옛날 1971년, 내가 우리 딸 알렉산드라를 낳았을 때 처음 이곳 샌프란시스코에 오신 시부모님들은 우리들이 살고 있던 마리나 비치의 작은 아파트와 그 체스넛 거리를 너무 좋아하셨다. 꽃 가게와 오!쏠레미오라는 피자집과 작고 앙징맞은 가게들을…. 그리고 금문교가 보이는 그 멋있는 거리들을….

이제 그때 그 사람들은 떠나고 그들의 모습은 내 기억 속에만 있다. 나도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나면 내 자식들의 가슴 속에 한낱 추억으로만 남아있게 되겠지. 이게 인생이지. 사노라면 생각이 나고 또 세월이 흐르면 저절로 잊혀지겠지. 나는 운전을 하는 딸의 옆모습을 훔쳐 보며 혼자 속으로 김소월의 시 한편을 읊어 본다.

‘못잊어 생각이 나겠지요.그런대로 세월만 가라시구려 못잊어도 더러는 잊혀오리다’

<김옥교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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