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어느 긴 여행

2019-06-03 (월) 12:00:00 이보람 adCREASIANs 어카운트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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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긴 여행

이보람 adCREASIANs 어카운트 매니저

한국 여행 중이다. 여행 자체는 즐겁지만 여행 전후로 여러 가지 할 일들이 참 많다. 2주가 넘게 집을 떠나 있으려니 짐을 싸는 데도 한참이 걸렸다. 집도 오랫동안 비워 두자니 이것저것 신경 쓸 것이 많았다.

냉장고 비우기, 쓰레기통 비우기, 수영장 물 채우기 등의 일은 내가 하고 가면 되는 것들이었지만 다른 일에는 남의 도움이 필요했다. 우편물이 쌓이면 좀 치워야 빈집 티가 안 날 것 같고 차도 너무 오래 안 쓰면 안 될 것 같아 우편물 체크와 시동도 한 번 걸어줄 사람이 필요했다. 집을 비운 동안 수상한 사람이 있으면 연락 달라고 옆집 이웃에게도 말해두었다.

살아있는 것들은 더 신경이 쓰인다. 적어도 일주일에 한 번은 물을 줘야하는 식물들, 그리고 우리 집 노견은 각각 여동생과 남동생에게 맡겼다.


회사에서도 가기 직전까지 여러 업무를 처리하느라 분주했다. 그래도 내 부재 동안 업무를 분담해줄 동료와 상사가 있어 마음 편안하게 나올 수 있었다. 보스가 여비까지 챙겨주어 고마웠다.

선물 준비로도 바빴다. 고국에 가서 오랜만에 만날 얼굴들을 그리며 작은 선물들을 준비했다. 한국에는 없는 게 없다지만 입국할 때 나의 짐가방은 친지들 선물로 빈자리가 없었다. 이제 돌아갈 날이 다가오니 미국에 가져갈 선물 구입이 과제로 남았다.

나 좋자고 떠나는 여행인데 신세 져야 하는 곳이 이렇게나 많다. 고작 2주 여행을 가는 데도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나를 위해 수고해주고 나 또한 신경 쓸 일이 많은데 결혼이라는 인생의 긴 여행을 떠나자니 할 일이 태산이다.

숱하게 여행을 다녔던 터라 나는 나름 여행 베테런이지만 이번 여행은 준비부터가 참 어렵다. 후딱 해치워버리고 싶지만 나 혼자만의 일이 아니기에 그럴 수도 없다. 우리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여행 기획을 위해 여러 가지로 분주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바쁘지만 최대한 즐기면서 하려고 노력 중이다.

결혼은 두 사람만의 여정인 줄 알았는데 벌써부터 주위 도움을 많이 받고 있다. 식장 예약, 드레스 선정, 하객 선물 구입 등 준비 과정에 친지들이 발 벗고 나서 내 일처럼 도와주고 있다.

고국에 나와 있는 2주 동안 만나는 사람들이 아직 청첩장도 찍지 못했는데 결혼이라는 여행에 보태라며 축의금이라는 이름의 여비를 챙겨준다. 먼저 이 긴 여행을 떠난 인생 선배들이 뼈와 살이 되는 조언도 해준다.

그런 고마운 마음들에 보답하고자 결혼식은 물론 그 전후 행사에 있어 행여 놓치는 부분이 있을까 하나부터 열까지 더 세세하게 들여다보게 된다.

처음이라 모르는 것 투성이다. 서툴지만 나의 긴 여행에 있어 내가 떠나갈 빈자리를 잘 정리하고, 그리고 새로이 둥지를 틀 자리에도 잘 안착할 수 있기를 바란다.

우선 지금 한국 방문을 잘 마무리하고 돌아가 또 여행 준비에 매진할 예정이다. 여행 뒤 또 여행이라니 고되지만 늘 그렇듯 여행이라는 말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거린다. 이번 여행은 티켓 환불도 어려운, 정말 길고 긴 여행이니 빠뜨리는 것 없이 누구 하나 몸과 마음 다치지 않고 좋은 여행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그 길에 또 함께할 사람들이 많아 참 고맙고 복된 삶이다.

<이보람 adCREASIANs 어카운트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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