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세대 간극(劇)
2019-06-01 (토)
신선영(UC버클리 학생)
이민 가정이 많은 샌프란시스코 지역에서 몇 년간 생활하면서 이제는 너무나도 익숙해진 풍경이 있다. “엄마!”라는 짧고 굵은 외침 이후 유창한 영어로 총알처럼 자신의 요구를 늘어놓으며 자식 노릇 성실히 하는 2세들과 그걸 또 용케 알아듣고 한국어로 열심히 잔소리를 늘어놓는 부모님. 이런 풍경은 이곳에서 참 흔하지만 매번 흥미롭다.
수줍은 웃음이 매력인 가까운 지인, 언니네 가정을 통해 이민 1세대와 2세대의 간극에 대해 생각해볼 기회가 있었다. 언니는 샌프란시스코에서 태어나 한번도 이곳을 벗어난 적 없다. 화교 출신 언니 어머님은 중국의 문화혁명을 피해 한국으로 넘어갔다 아저씨를 만나 가족들과는 소식이 끊긴 채 먼 땅 미국에서 새 삶을 시작했다. 아줌마는 밑바닥부터 시작해 겨우 생계를 꾸려 나갔고 서투른 영어 때문에 온갖 차별을 당하며 많이도 외로웠다고 한다. 하지만 이런 아픔은 본인 세대에서 끝나야 하는 것이라 생각하며 언니가 흠 없이 자랄 수 있게 더 악착같이 견뎌냈다. 차별과 업신여김에도 꾹 참아왔던 눈물 탓일까, 아줌마는 언니가 유창하게 영어로 대화할 때마다 당연한 것임을 알면서도 무척이나 뿌듯하다고 했다.
배 하나 깎아먹으면서 이런 이야기 듣는 것을 좋아하는 나에게 언니는 무슨 이야기하냐고 통역을 요구하곤 하지만 엄마의 옛날이야기라고 하면 곧 민망한 표정으로 달아나버린다. 그 장난스럽고 순진한 웃음 뒤에는 괜한 죄책감과 표현 못하는 연민이 있었고 그 감정의 무게는 진정 본인만이 안다. 누구보다 고생한 부모님께 절대 말하지 못하는 아픔과 복에 겨운 정체성 고민을 뒤로 한 채 언니는 천진난만한 웃음을 짓는다.
세대간의 간극은 시공간과 정도를 불문하고 존재한다. 이민 가정에서 이런 세대 간의 거리는 유난히 도드라져 보인다. 제3자인 내가 이런 간극의 성향이나 핵심을 파고들거나 지나치게 이해하려는 노력은 주제넘은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세대 간의 간극 이전에 각 세대만의 극(劇)이 존재한다는 말장난스러운 결론 정도는 내려봐도 될 것 같다. 이 극(劇)은 ‘연극’할 때 쓰이는 ‘심할 극’자이다. 1세대가 겪어온 심한 수고스러움과 2세대가 겪어가는 심한 혼란은 개개인의 희로애락으로 색칠되어 한 무대에서 만난다. 이 무대에서 세대간극(劇)은 메꿔질 수 없는 어떤 차이가 아닌 존중받아 마땅한 각 세대의 대단함이다.
<신선영(UC버클리 학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