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름드리 왕버들 50여 그루가 자라는 성밖숲은 500년 가까이 성주 주민과 함께 해 왔다. 여름이 되면 바닥의 맥문동이 보라색 꽃을 피워 환상적인 장면을 연출한다.
성주가 고향인 심산 김창숙을 기리는 심산기념관. 단아한 외관과 달리 전시물은 빈약하다.
학교를 마친 아이들이 성밖숲 옆 이천의 작은 보에 설치된 어도에서 더위를 식히고 있다.
성주버스정류장 앞 상가에 영화‘택시운전사’ 촬영지임을 알리는 현수막이 걸려 있다.
‘참외’앞에는 으레‘성주’가 수식어처럼 붙는다. 전국에 유통되는 참외의 70%가 경북 성주에서 생산된다. 이쯤 되면‘성주참외’가 아닌 것은 참외가 아니다. 그래서 성주시장에 가면 참외가 산더미처럼 쌓여 있을 줄 알았다. 과일 가게가 없진 않지만 성주시장에선 의외로 참외가 귀하다. 5,000여 농가가 참외 농사를 짓고 이웃과 나눠 먹으니 성주 사람은 굳이 참외를 사먹을 일이 많지 않아서다.
참외 말고 성주에 유명한 게 또 하나 있다. 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사드(THAAD)’다. 900여명의 주민이 삭발로 항의해 읍내 동쪽 성주의 진산에 들어서는 것은 막았지만, 사드 기지는 결국 초전면 소성리 산골짜기에 터를 잡았다.
밖에서 안을 품다…성주를 품은 ‘성밖숲’
성주는 참외와 사드로만 기억되기에 아까운 도시다. 중부내륙고속도로 성주IC에서 읍내로 들어서는 길목, 폭이 넓지 않은 이천을 가로지르는 경산교를 건너면 오른편에 작지만 큰 숲이 읍내를 가리고 있다. 바로 ‘성밖숲’이다.
일찍 찾아온 여름, 버드나무 가지는 솜뭉치처럼 뭉실뭉실한 꽃가루를 풀풀 털어냈다. 초록이 짙어가는 숲 그늘에 아이들의 재잘거림이 참외 향처럼 달콤하게 퍼진다. 산책 나온 강아지마냥 몇 발짝 옮기다 풀 향기에 이끌려 쪼그리고 앉는 바람에 걸음은 한없이 더디다. 1호 왕버들나무 그늘에선 동네 주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담소를 나눈다. 사방으로 뻗은 가지가 넉넉하게 그늘을 드리우고, 그 그늘과 땡볕의 경계를 따라 둥그렇게 벤치가 놓였다. 한낮의 열기도 이곳에선 한풀 꺾인다. 숲 앞을 흐르는 하천에선 학교 끝난 아이들이 웃통을 벗어제치고 멱을 감고, 바로 옆 어도에선 왜가리 한 마리가 오랜 기다림 끝에 물고기 한 마리를 낚아챈다.
사실 성밖숲은 아침 해가 뜨기 전부터 분주했다. 경계심 많은 새들도 숲에 들면 제세상이다. 소형 보에 갇혀 흐름이 느려진 하천에 엷은 물안개가 스멀스멀 기어오를 무렵부터 온갖 새들의 지저귐이 숲을 가득 채운다. 최고의 금실을 상징하는 원앙새는 이 나무 저 나무를 부지런히 옮겨 다니며 짝을 찾기에 바쁘다. 아침 운동을 하기 위해 하나 둘씩 늘어나는 주민들의 발소리도 개의치 않았다. 한 번 짝을 맺으면 평생을 함께한다는 원앙, 알고 보면 바람둥이다. 아침 햇살이 풀 끝에 맺힌 이슬을 삼킬 즈음이면 숲 사이로 난 산책로를 돌며 운동하는 주민이 더욱 늘어난다. 나무 그늘 아래 맥문동은 장마가 끝날 즈음부터 하나둘씩 꽃을 피워 바닥을 온통 보랏빛으로 물들인다. 눈부신 5월에 이어 본격적으로 여름에 접어들면 성밖숲은 다시 한번 환상의 숲으로 변신한다.
성밖숲은 이름 그대로 성주읍성(星州邑城) 바깥에 조성한 인공림이다. 300~500년 된 왕버들 쉰두 그루가 자라고 있다. 성주의 문화와 역사를 기록한 ‘경산지(京山誌)’와 ‘성산지(星山誌)’에 의하면 읍성 서문 밖 아이들이 이유 없이 죽어가는 흉사가 이어지자 이를 방지하기 위해 숲을 조성했다고 한다. 족두리바위와 탕건바위(실제 바위의 위치는 확인되지 않았다)가 마주 보고 있어 발생하는 이 재앙을 막기 위해 중간에 밤나무 숲을 조성했다. 그러나 임진왜란 후에 민심이 흉흉해지자 밤나무를 베어 내고 왕버들로 수종을 바꿨다고 전한다. 복된 기운이 빠져나가는 것을 방지하고 나쁜 기운을 막기 위한 전형적인 비보림(裨補林)이다. 애초 풍수지리에 입각해 조성했지만 성밖숲은 읍내를 휘감아 돌아가는 이천의 범람을 막는 든든한 버팀목이었고, 지금은 쉼터이자 사랑방으로 주민과 함께 호흡하는 생활 공간이다.
500년 세월이 순탄치만은 않았으리라. 뒤틀리고 휘어지고 늘어지고 깊은 옹이를 품은 기둥과 가지 하나하나가 숲의 이력이고 성주의 역사다. 그저 운치 있다는 한마디로 퉁치기 아쉬운, 성밖숲의 다양한 모습이다.
낡아서 더 새로운…타박타박 ‘별고을길’
‘성 밖’이 있으면 ‘성 안’이 있는 게 당연한 이치지만, 현재 성주 읍내에선 정확히 어디가 밖이고 안인지 경계가 분명치 않다. 허물어진 토성의 흔적은 찾을 길이 요원하고 사대문이 있던 자리를 겨우 표시해 놓은 게 전부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읍내가 현대식으로 싹 바뀌었냐 하면 그도 아니다.
읍내 중심의 ‘성주버스정류장’은 영화 ‘택시운전사’(2017)에서 순천터미널로 묘사됐다. 39년 전 순천의 모습에 머물러 있다는 말이다(실제는 1972년에 지어 그보다 더 오래됐다). 명칭도 그 흔한 터미널이 아니고 여태껏 ‘버스정류장’이다. 대도시를 오가는 세련된 고속버스보다는 면 단위 주민들의 발이 돼주는 시골버스가 더 자주 다니기 때문이다. 대합실에는 집으로 가는 버스를 기다리는 어머니 승객이 대부분이다. 행선지와 운행 시각이 적힌 표지판 아래 식당은 영화에서 택시운전사 만섭(송강호 분)이 국수를 먹었던 곳이다. 선풍기, 환풍기, 시계가 걸린 낡은 벽면에 ‘송강호 국수 3,500원’이라는 메뉴가 사진과 함께 붙어 있다.
버스정류장 입구 ‘㈜성주택시’ 간판이 걸린 상가는 정류장 건물보다 더 낡았다. 주변 풍경도 사정은 비슷해 당장 1970~8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찍어도 ‘옥에 티’를 발견할 수 없을 듯하다. 성주군에서 조만간 정류장과 상가 건물을 허물고 주민 생활 공간으로 조성할 예정이라니 이 모습을 볼 날도 머지않았다. 버스정류장으로 연결되는 ‘경산길’은 그래도 읍내 중심이다. 담쟁이 넝쿨이 외벽 전체를 감싼 건물에서 3대째 영업 중인 ‘새마을 플라워’ 꽃집이 있고, 프랜차이즈 점포가 득세하는 시대에 동네 빵집 ‘빵아저씨’와 카페 ‘커피 전빵’이 버티고 있는 모습도 대견하다.
성주군은 최근 주민의 일상이 녹아 있는 버스정류장 주변과 시장, 역사 유적을 연결해 읍내를 걷는 ‘별고을길’을 조성했다. 성밖숲에서 조금만 걸으면 가장 먼저 도로변에 ‘쌍충사적비’가 등장한다. 임진왜란 때 왜적과의 전투에서 전사한 성주목사 제말과 그의 조카 제홍록 두 사람을 기리기 위해 정조16년(1792)에 세운 사적비다. 성밖숲 지명의 유래가 된 성주읍성 서문이 있던 자리이기도 하다.
쌍충사적비 바로 옆에는 심산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다. 독립운동가이자 성균관대를 설립한 교육자 김창숙(1879~1962)의 뜻을 기리기 위해 후손과 지역 유림이 세운 기념관이다. 1974년에 지은 건물치고는 골격이 탄탄하고 제법 단아한데, 그의 어록 한 점과 빛 바랜 유물 사진 외에 이렇다 할 전시물이 없어 내부는 다소 쓸쓸하다. 심산의 고향 대가면 칠봉리에 그의 생가가 남아 있다. 심산기념관 뒤편은 성주목관아 객사인 ‘성산관(星山?)’이다. 목관아의 객사로는 아담한 규모다. 임진왜란 때 관아가 전소되고 난 뒤 선조 41년(1607) 지금의 성주초등학교에 지은 객사 건물의 일부를 옮겨온 것이다.
성주버스정류장에서 몇 걸음 옮기면 관왕묘(關王廟)가 있다. 서울의 동묘처럼 중국 촉나라 장수 관운장을 배향하는 곳으로 정유재란 때 조선에 파병된 명나라 장수 모국기가 성주성 전투에서 왜병을 물리친 것을 계기로 세워졌다. 관왕묘는 서울 2곳을 비롯해 지방에는 성주ㆍ안동ㆍ강진ㆍ남원 네 곳에 건립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관왕묘를 관리하는 관운사의 천왕문 벽면에는 겸재 정선이 그린 ‘쌍도정도(雙島亭圖)’ 복사본이 걸려 있다. 18세기 초 절에서 내려다본 성주읍내 풍경으로 다리로 연결된 두 개의 인공섬 위에 정자와 소나무가 멋들어지게 어우러져 있다. 이왕 버스정류장 주변을 정비하기로 했다니 이렇게 옛 모습으로 복원하는 것도 나쁘지는 않을 것 같다.
관왕묘 옆으로 제법 가파른 길을 오르면 성주여자고등학교다. 운동장 한쪽 귀퉁이에 구한말 흥선대원군 때 세운 척화비가 있다. 이것 하나 보자고 간다면 실망할 것이고, 목적은 딴 데 있다. 성주여고는 읍내에서 가장 높은 자리에 위치하고 있어 사방으로 시야가 트였다. 성밖숲 방향으로 시선을 돌리면 하천 너머 들판에 비닐하우스가 빼곡하다. 이게 무슨 볼거리인가 싶지만, 성주군을 먹여 살리는 참외밭이니 중요성으로 따지면 으뜸이다. 당당히 성주 8경 중 하나로 이름을 올린 풍경이다.
<
성주=글·사진 최흥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