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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태문의 팝송산책] Que Sera Sera (도리스 데이 스토리)

2019-05-24 (금) 정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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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릴 적 엄마에게 앞으로 어떻게 될까 물어 봤죠. 귀여울 까요 ? 부자가 될까요? 엄마의 대답은 케세라 세라 앞날은 우리가 알 수가 없는 일 무엇이 되던 그냥 흐르는데로 두렴. 내가 자라서 나의 연인에게 물었죠 우리들의 앞날에 무지개가 날마다 볼 수가 있을까? 나의 연인의 대답은 케세라 세라 무엇이 되던 그냥 내버려 두자. 난 이제 결혼하여 나의 자녀를 가졌구나. 그들이 엄마에게 물었죠. 앞으로 미남이 될까요 ? 부자가 될까요? 난 그들에게 말했죠. 미래는 알 수가 없는 일. 케세라 세라 무엇이 되던 그냥 흘러가자꾸나’

이 노래 는 1953년 ‘도리스 데이’가 노래하여 전세계적으로 크게 성공한 ‘Que sera sera’의 가사 내용이다. 간단하고 쉬운 가사 내용 같지만 심오한 인생 철학이 담긴 명작의 팝송이다.

2019년 5월 13일 Mother’s Day 다음날 만인의 연인이자 ‘이웃집 소녀’ 란 별명을 가진 ‘도리스 데이’가 캘리포니아주 카멜 시티에서 97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그녀는 가수이자 배우이며 또한 동물 복지 사회 운동가였다. ‘도리스’는 어릴적 부터 노래 소질을 타고나 라디오에서 나오는 노래를 따라 부르며 가수의 꿈을 꾸었다. 음악 교사이자 합창 지휘자인 부친의 권유로 보컬 트레이닝을 1년간 받았다. ‘도리스’를 가르치던 선생 ‘그레이스’는 그녀의 재능을 본 후 레슨 비용을 70% 할인해 주었다는 일화가 있었다. 보컬 트레이닝 8개월 만에 라디오에 출연할 기회를 가지게 되었고 로컬 호텔에서 노래하기도 했다. 이때 여자 가수를 찾고있던 ‘바니 렢’은 이미 200 명 이상의 여자 가수 지망자의 오디션을 보았지만 만족하지 못해 거의 마지막 희망으로 ‘도리스’에게 희망을 가졌다. 오디션 결과 ‘바니 렙’은 크게 만족하여 그녀를 세계적인 빅 밴드 ‘지미 제임스’,’레스 브라운’ 등과 공연하게 주선했다. 그런 후 1945년 첫 번째 취입한 데뷔 곡 ‘센티멘탈 져니’가 센세이션을 일으켜 그녀의 이름이 미 전국적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그 후 그녀는 계속 힛트 송을 발표하여 성공의 길로 걸어가자 영화계에서도 그녀를 주목하여 영화 감독 ‘마이클 커티즈’가 오디션을 요청하자 깜작 놀란 ‘도리스’는 감독에게 이렇게 말했다. “감독님 저는 할 줄 아는 것은 노래 밖에 없어요. 연기는 해 본 적도 없고 생각해본 적도 없어요” 그러나 영화 감독은 그녀의 솔직하고 겸손한 태도가 마음에 들어 1948년 첫 데뷔 영화 ‘Romance On the High Sea’에 그녀를 출연 시켰다. 그렇게 시작한 연기 생활은 1968년 까지 39편의 영화에 출연했다. 특히 1959년에 제작한 영화 ‘Pillow Talk’은 ‘록 허드슨’과 함께 출연하여 그녀는 생애 처음으로 아카데미 여우 주연상 후보로 선정되기도 했다.


66년 가수 활동 중 그녀는 32개의 레코드 앨범을 발표했으며 1956년 출연 한 영화 ‘The Man Who Knew Too Much’ 에서 노래 한 ‘케세라 세라’는 최우수 아카데미 오리지널 송, 그리고 1953년에 출연 한 영화 ‘Calamity Jane’ 에서 부른 ‘시크릿 러브’는 아카데미 주제가 상을 각각 받았다. 1950 년 대 한국에 주둔한 미군 병사들이 선정한 가장 좋아하는 연예인 투표에서 당당 1위로 선정 되기도했다. 그녀는 회고록을 집필하기 위한 인터뷰에서 헐리우드 비사 한가지를 밝혔다. ‘사이먼 가푼클’이 부른 주제곡 ‘Mrs. Robinson’이 삽입된 영화 ‘졸업’ 에 출연 요청이 있었다. 1968년 에 상영되어 전세계적으로 성공을 거둔 영화 ‘졸업’ 촬영 직전 영화사에서 Mrs. Robinson 역을 제의 했으나 그 역할이 너무 충격적이라 거절했다고 한다. 그 역은 후에 ‘앤 클로프트’에게 맞겨졌다. ‘이웃집 소녀’의 이미지로 30년의 연기 생활을 해온 그녀가 자기 딸의 남자 친구와 잠자리를 같이하는 장면을 촬영한다는 자체가 그동안 쌓아온 이미지와 맞지않아 출연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도리스 데이’의 본명은 ‘카펠 호프’ 이었다. 그러나 매니저가 부르기 쉬운 이름으로 바꾸려고 고심 하는 중 그녀가 ‘Day By Day’노래를 너무 멋지게 불러 거기에서 힌트를 얻어 ‘도리스 데이’로 개명 했다고 한다. 그녀는 평소 죽음을 인정하고 싶지않았으며 따라서 자신의 죽음에 대한 흔적을 남기고 싶지않아 장례식, 추모식 그리고 묘지가 없다고한다. 필자 또한 그녀의 유언대로 항상 우리들 곁에 있다고 인정해주기로 했다. 자! ‘도리스 데이’ 를 생각하며 그녀의 노래 중 언제 들어도 기분 좋게 만드는 노래‘A Guy Is A Guy’ 와 ‘Everybody Loves A Lover’ 를 추천한다.

<정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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