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빛이 방안을 가르고 길게 들어와 눕는다. 테이블에, 의자에, 짜여진 물감들에, 그리고 이들의 그림자 위에까지. 예닐곱의 이젤 위에 각각의 캔퍼스가 놓여 있고 이젤들의 그림자는 길게 다리를 뻗어 서로서로 구석을 찾아 숨어든다. 이들을 지휘하듯 한 화가가 캔버스를 오가며 그림을 그린다. 새벽녘 빛이 숨을 고르며 다가오기 시작할 때 이를 머금은 푸르고도 어둑한 대상을, 안개 속에서 아침을 열며 스물스물 다가오는 엷은 빛을 받은 모습을, 한낮의 빛을, 그리고 길어진 그림자 만큼이나 깊어진 노을 빛의 그것을. 대상의 형상은 따뜻하고 때론 차가운 그날의 공기와 빛에 따라 서로 다른 색들로 용해되어 갔다.
1892년 겨울, 프랑스의 한 화가는 루앙의 대성당 서쪽이 비스듬히 바라다보이는 한 상가에 방을 구하고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그는 이듬해 봄까지 그곳에 머물며 계절과 날씨, 시간대에 따라 빛의 양과 그림자의 각도가 달라지고, 대상의 색이 변하는 것을 관찰하며 이를 30여개의 캠퍼스에 담은 연작을 그렸다. 그의 이름은 클로드 모네(Claude Monet), 그가 그려낸 것은 빅토르 위고가 1831년 발표한 소설 ‘파리의 노트르담’과 이를 영화화한 ‘노틀담의 꼽추’로 잘 알려진 노틀담 대성당이었다.
회색 빛에 일관될 듯 보이는 성당은 그에 의해 다양한 빛깔로 재창조 되었다. 태양이 떠올라 저물 때까지의 노틀담 성당을 비추는 모습을 연작으로 구성한 이 작품은 동일한 사물이 빛의 변화와 시각적 관점에 따라 얼마나 다르게 보일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그는 빛을 매개로 이를 증명해 보이고 있었다.
12세기 건축을 시작해 800여년의 역사를 이어오고 있는 노틀담 대성당이 얼마전 보수 공사 중 화재로 불길에 휩싸였다. 불길이 쉬이 잦아들지 않는 가운데 회색 빛 연기가 하늘로 뿜어져 올라오고 있는 모습을 지켜보며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그곳에 나름의 의미를 부여해왔던 많은 사람들은 저마다 추억의 시간대를 훌쩍 넘어 마음은 이미 그곳에 가 있었을 것이다. 불길에 휩싸인 노틀담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거나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하는 사람들, 함께 노래를 부르는 모습은 이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한데 모아 위로하고 있었다. 노틀담 대성당이 모두 전소되지 않고 진화되고 주요 문화재도 보존할 수 있었음에 감사하다.
이렇듯 형체가 있는 것은 눈으로 식별할 수 있기에 태양빛에 따라서 새로워질 수도 있으며, 소멸의 위기를 감지하고 대처하거나 그 잔해의 아픔을 서로 나누기도 한다. 반면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무뎌짐과 망각이란 또 다른 이름으로 소멸의 길을 걷는다. 무엇이 더 위험한 것일까. 무엇이 더 아픈 것일까.
사람들의 가슴 속에도 크고 작은 화재가 일어난다. 때론 자연 발화가 원인이기도 하며, 때론 타의로 인한 방화로, 고의든 과실이든 발생 이후엔 뜨겁고 아프다. 사람들의 가슴 속에 상처로 남은, 보이지 않는 그들의 잔해들은 어떻게 치우고 깨끗이 할 수 있을까. 그곳은 모네가 그렸던 태양빛도 투과되지 않는, 막을 가진 심연의 그곳과도 같아서 마음대로 색이 입혀지지도 않는다. 시시각각 변하는 태양 빛과 계절의 변화와 기후에 따라 감지되는 공기의 온도와 입자들로부터 만들어진 노틀담 대성당 연작과 같이 외부적인 빛의 영향으로 발현되어진 모습과는 분명 다름이다.
변하지 않는 사물이 아닌 살아있는 사람의 심장은 내부에서 스스로 빛을 내어야만 존재의 의미가 있기 때문일까. 가슴 속에 남겨진 잔해와 화상의 상처에도 치유의 빛이 필요하다. 의지에 따라, 소멸은 간절함이란 사랑의 이름으로 치유될 수 있지 않을까. 간절함은 희망의 불씨로 살아난다. 그 한 조각의 불씨를 정성스레 모아 심장에 담고 꺼지지 않는 빛으로 되살려내는 것이다. 모네가 태양 빛으로 빚어 노틀담 대성당을 여러 색감으로 화폭에 담았듯, 잃어버린 소중한 가치와 삶의 의미를 찾기 위해, 그리고 하루하루 값진 생존을 위해 온 몸이 가슴 속 불씨를 살려내는 바람과 호흡이 되어 자신만의 빛을 발현하게 하는 것이다.
모네는 2년 동안 노틀담 성당을 바라보며 그림을 그리면서도 실제 성당에 들어가보지 않았고, 그가 처음 성당에 들어가 본 것은 연작이 완성되기 10일 전 쯤이라 한다. 노틀담 성당은 그에게 무엇이었을까. 노틀담은 그에게 언제나 변함없이 그 자리에 있는 캔버스였고 그가 실제 그린 것은 그 캔버스 위의 빛이었을까. 그것은 어떤 것에도 소멸되지 않는 심장이 뿜어내는 살아있는 빛이었을지도 모른다. 우리들 안에서 꿈틀대는 빛과 같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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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F한문협 회원 김소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