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66년의 기다림 철문이 열리자 평화의 바람이… 강원도 고성 DMZ ‘평화의 길’

2019-05-03 (금) 글·사진(고성)=나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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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통일전망대서 해안 철책 따라, 금강산전망대까지 동해 한눈에, 북녘 채하봉·구선봉 풍광 장관

▶ 철조망… 지뢰 경고판… 철길… 산책로 곳곳 분단의 아픔도

66년의 기다림 철문이 열리자 평화의 바람이… 강원도 고성 DMZ ‘평화의 길’

①강원도 고성의 DMZ‘평화의 길’이 민간에 처음 개방된 지난 27일 방문객들이 산책로로 들어서고 있다.

66년의 기다림 철문이 열리자 평화의 바람이… 강원도 고성 DMZ ‘평화의 길’

②강원도 고성의 DMZ‘평화의 길’을 찾은 여행객들이 동해의 풍광을 감상하며 산책로를 걷고 있다.


66년의 기다림 철문이 열리자 평화의 바람이… 강원도 고성 DMZ ‘평화의 길’

③금강산전망대에서 바라본 금강산 구선봉.


지난 27일 오전10시30분 강원도 고성의 통일전망대. 육군 22사단 헌병들이 동해안 최북단에 위치한 비무장지대(DMZ)로 들어가는 통로에 놓인 철문을 활짝 열었다. 통일전망대에서 북측으로 2㎞ 떨어진 금강산전망대로 향하는 ‘평화의 길’이 1953년 정전협정 체결 이후 66년 만에 처음으로 민간에 개방되는 순간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뒤에서 대기하고 있던 단체관광객들은 가슴 벅찬 표정을 억누르며 해안 철책길로 들어섰다.

정부는 지난해 체결된 ‘9·19 남북군사합의’에 따라 감시초소(GP) 철거 등 군사적 긴장 완화 조치가 이어지면서 이날부터 평화의 길 가운데 고성 구간을 일반 시민들에게 개방했다. 통일전망대에서 시작해 해안 철책을 따라 금강산전망대를 방문하는 고성 구간은 A코스와 B코스로 나뉜다. 2.7㎞ 도보 코스가 포함된 7.9㎞ 길이 A코스는 1회 20명씩, 차량으로 금강산전망대까지 왕복 이동하는 7.2㎞의 B코스는 1회 80명씩 하루 두 차례 운영된다. 월요일을 제외하고 매일 200명씩 평화의 길을 둘러볼 수 있다. 방문 신청은 한국관광공사 홈페이지나 행안부 DMZ 통합정보시스템을 통해 하면 된다. A코스의 경우 1차 방문기간인 27일~5월7일은 정원 360명에 5,870명의 신청자가 몰려 16대1이 넘는 경쟁률을 보였다.

두 산책로 가운데 A코스를 선택하고 발걸음을 옮겼다. 가파른 경사 위에 조성된 나무 데크길을 따라 아래로 내려가자 해금강을 품은 동해안의 시원한 풍광이 눈앞에 펼쳐졌다. 햇살은 따사로웠고 바닷바람은 완연한 봄의 기운 덕분에 쌀쌀하지 않았다. 하지만 탄성이 나올 만큼 아름다운 경치에도 불구하고 반세기 넘게 이어진 분단의 아픔은 산책로 곳곳에 그림자를 드리웠다. 바닷가에 높다랗게 세워진 철조망과 방문객들의 주의를 환기하는 ‘지뢰 경고판’은 한반도가 여전히 서로 다른 이념과 노선을 채택한 두 나라가 대치 중인 땅이라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A코스에서 해안 산책로가 시작되는 초입에 위치한 동해 북부선 철로 역시 분단의 쓸쓸한 상처를 품은 구조물이다. 강원도 양양에서 고성을 거쳐 북한 안변까지 이어지는 이 철로는 원래 일제가 식민지배 당시 자원 수탈을 위해 설치한 것이다. 한국전쟁 이후 50년 넘게 폐쇄됐다가 2000년대 들어 남북 협의를 통해 철도 운행을 재개했으나 2007년 5월을 끝으로 다시 멈춰 섰다. 서울 서초구에서 온 송해숙(70)씨는 “DMZ 산책로가 개방된다는 소식을 듣고 감격스러운 마음에 재빨리 예약했다”며 “이 철로를 달리는 기차를 타고 북한 땅을 자유롭게 밟는 그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오른편에 바다를 끼고 한참을 걷자 평화 통일에 대한 시민들의 염원을 한데 모으기 위해 설치된 ‘소망 트리(tree)’가 눈에 들어왔다. 일반인 개방에 앞서 하루 전날 이곳을 방문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쓴 ‘평화가 경제다’라는 글귀를 보며 방문객들은 너도나도 각자 희망과 바람을 담은 얇은 플라스틱을 소망 트리에 걸었다.

평화의 길 A코스의 하이라이트는 역시 금강산전망대다. 이 전망대는 2.7㎞의 도보 산책로가 끝난 지점에서 버스를 타고 1.6㎞ 정도 이동하면 모습을 드러낸다. 이 전망대에 서면 금강산에서 비로봉 다음으로 높은 채하봉과 여러 형태의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는 구선봉이 보인다. 산책로의 시작점이던 통일전망대에서는 흐릿한 윤곽만 겨우 가늠할 수 있었던 봉우리들이다. 멋진 풍경을 넋 놓고 감상하다가도, 추억의 사진을 남기기 위해 연신 카메라 셔터를 눌러대다가도 ‘저 멀리 보이는 금강산은 아직 우리가 가닿을 수 없는 곳’이라는 데 생각이 미치면 마음 한구석이 저릿해 온다.

정부는 고성 구간에 이어 백마고지 전적비부터 DMZ 남측 철책길을 걷는 철원 구간과 임진각에서 시작해 도라산전망대를 거쳐 철거 GP를 방문하는 파주 구간도 단계적으로 개방할 계획이다.

<글·사진(고성)=나윤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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