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오늘 하루 이 창 열지 않음닫기

[여성의창] 마음을 파는 식당

2019-04-26 (금) 12:00:00 정윤희(주부)
크게 작게
남편의 사업부도로 엄마에게 등 떠밀다시피 요식업을 시작하게 된 나이가 서른네살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어린 나이에 뭘 안다고 했을까 싶지만 한번씩 엄마가 와서 보고는 “참 희한하다. 내가 너에게 장사는 어떻게 해야 되는 거라고 알려준 적이 없는데 하는 걸 보니 나무랄 데가 없구나!”라고 하셨다. 난 무엇보다도 손님을 진심으로 대하고 싶었다. 장사가 뭔지, 상인이 된다는 게 뭔지 확고한 신념도 없으면서 식당은 음식만 아니라 마음도 파는 곳이어야 된다는 막연한 생각을 했다. 장사는 결국 이윤도 남겨야겠지만 사람을 남기는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된 건 식당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서다.

손님 중에 남편은 세상을 떠나고 아이들은 셋이나 되는, 형편 어려운 가족이 있었다. 한번 오면 큰맘 먹고 오는데 인원수대로 주문을 하질 못했다. 주인 입장에서야 더 팔고 싶지만 그렇게 해서 더 판들 얼마나 더 큰 부를 챙기겠는가? 나는 형편상 어쩔 수 없이 미안해하며 적게 주문하는 그 상황을 충분히 이해했다. 그 가족이 오면 가장 없는 빈 자리가 마음 아파서, 혼자의 힘으로 살아내야 하는 그분의 무거운 짐이 안쓰러워서 나만의 작은 친절을 베풀었다. 아이들하고 충분히 먹을 수 있게 더 음식을 얹어주고 식사를 마치는 내내 부족한 게 없나 자주 들여다봤다. 아이들 중에 누가 생일이면 그분이 불편해할까봐 전날 만들어 놓은 포장음식이니 부담 갖지 말고 드시라며 손에 새 음식을 들려 보냈다.

어느 날 그 집 큰딸이 나에게 편지를 쥐어줬다. 아빠도 없이 넉넉하지 않은 형편에 외식을 하려면 온 식구가 우울했다고...그런 저희 가족에게 너무나 따뜻하게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하다는 글이었다. 이 감동을 매출이 많이 오른 날의 기쁨에 비할 수가 있을까? 주인은 근심 걱정이 많아도 손님을 대할 때 만큼은 늘 여유와 미소로 대하며 손님을 살뜰히 챙겨야 한다. 일단 내 집에 음식을 먹고자 들어오는 손님이라면 조금이라도 불쾌한 마음을 안고 가게 해서는 안된다. 손님이 다시 오고 안 오고는 나중 문제다. 손님들의 그런 마음을 헤아린 주인의 작은 친절은 손님 입장에서는 큰 감동인 것이다. 음식점이 맛만 있다고 대박을 치던 시대는 지났다. 맛도 있지만 특별히 뭔가가 있는, 따뜻한 마음까지도 사고판다면 많은 이에게 가슴에 남는 장소로 기억될 것이다.

<정윤희(주부)>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