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정치의 언어’ ‘종교의 언어’

2019-04-17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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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는 국민들 사이의 견해차이와 이해다툼을 해소해 국민복리를 최대화해 나가는 행위를 말한다. 국민들 개개인은 다툼을 벌이고 협상을 할 수 없기에 대리인인 정치인과 정당의 선택을 통해 자신들의 입장을 주장하고 개진한다. 그러니 수탁자인 정치인들의 책임은 참으로 무겁고도 막중하다 할 수 있다.

정치란 이처럼 다양한 갈등을 조정하고 조율하는 데 존재 이유가 있는 만큼 정치의 언어는 때때로 설득과 타협의 언어가 돼야 한다. 하지만 한국정치에서는 이런 언어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오로지 대립과 증오의 막말들만 넘쳐난다. 정치 실종상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 황교안 자유한국당 대표가 정치 일선에 나선 후 이런 현상은 더욱 뚜렷해지고 있다. 그가 대표 취임 후 50여 일 동안 던져온 메시지와 언어에서는 타협과 대화의 의지를 전혀 찾아 볼 수 없다. 정치신인으로서 보수층에 존재감을 확실히 각인시키겠다는 의욕은 이해하지만 조급함이 지나친 것 같다. 그의 입에서는 도무지 정치의 언어라 보기 힘든 표현들이 너무 자주 나온다.


잘 알려져 있듯 황교안 대표는 침례교 전도사이다. 종교의 자유가 있는 나라에서 그의 종교선택이 시빗거리가 될 수는 없다. 문제는 그의 종교관이 정치의 언어 속에 너무나 짙게 투영돼 있다는 점이다. 황 대표의 언어는 근본주의 기독교를 닮아 있다.

그는 정치를 다양성 속에서 합의점을 찾아가는 과정이 아닌, ‘선과 악’ 라는 이분법으로 보고 있는 것 같다. 그의 발언 속에는 ‘악한 세력’ ‘천사’ ‘결사항전’ 같은 어휘들이 자주 등장한다. 마치 중세 십자군 전쟁에 나선 기사 같다.

황 대표 취임 후 그가 여권에 유화적인 모습을 보였던 기억이 전혀 없다. 건국 이래 최대 위기니 혼란이니 하면서 부정적 인식을 심어주는 데만 몰두하고 있다. 집권세력에 대한 견제와 비판은 필요하지만 박근혜 시절 국정혼란에 대해 책임을 면하기 어려운 인사가 취할 언사는 아닌 것 같다.

이런 사고와 언어 속에서 다름과 다양성은 용납되지 않는다. 오직 자신만이 선이고 상대는 절대 악이다. 입장차를 줄이고 타협해야 할 상대가 아니라 무찌르고 쓰러뜨려야 할 적일뿐이다. 이분법적 사고의 공간에는 참다운 정치가 들어설 자리가 별로 없다.

당 대표의 시대착오적 언사를 자한당 의원들까지 뒤따르고 있는 것은 참으로 암울하고 한심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조양호 회장의 죽음도 정권 탓, 강원도 산불도 정권 탓을 하며 색깔론 선동을 일삼는다. 게다가 대통령이 산불 발생 시간대에 술을 마셨고 보톡스 시술을 했다는 등의 유튜브 가짜뉴스까지 퍼 나르며 ‘아무 말 대잔치’를 벌인다. 급기야 일부 전·현직 의원은 세월호 유가족들을 향해 혐오와 조롱의 언어까지 퍼부었다.

이들의 언어에서는 오로지 상대를 부정하면서 그것을 통해 자신의 주장을 정당화하고 반사이익을 얻고자 하는 비뚤어진 욕망이 읽힐 뿐이다. 타인의 고통과 재앙을 자신들의 맹목적 믿음을 정당화하는데 악용하고 있다는 점에서 동남아 쓰나미를 “기독교를 믿지 않는 이교도들에게 내린 하나님의 심판”이라고 했던 몇몇 대형교회 목사들의 정신 나간 발언을 연상시킨다.

정치는 어디까지나 ‘정치의 언어’를 통해 이뤄져야 한다. ‘종교의 언어’가 그 자리를 대신하는 것은 너무나도 위험하다. ‘거듭난’ 크리스천이라고 고백했던 부시는 이라크 전쟁을 일으키면서 ‘더 높은 곳의 아버지’(a higher father)를 언급했다. 그 아버지가 부시에게 부여했다는 소명은 무수한 인명의 살상이라는 참혹한 결과를 초래했다. ‘악의 평범성’ 연구로 유명한 정치철학자 한나 아렌트가 “정치가 종교의 언어를 빌릴 때 폭력이 발생한다”고 지적했던 것은 정말 탁월한 경고가 아닐 수 없다.

황교안 자한당 대표는 정치의 언어를 배우길 바란다. 기존의 이분법적 세계관에 계속 갇혀 있는 한 그의 정치적 장래는 낙관적이지 않다. 종교조차 다름과 다양성을 끌어안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시대에 황 대표의 언어와 사고는 종교의 기준으로 볼 때도 낡았다. 무엇보다도 “무릇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는 성경의 가르침을 황 대표와 자한당 의원들은 기억하길 바란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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