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2019-04-10 (수) 남상욱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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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이야기 하나. 예루살렘 성문 옆에 베데스다라는 연못이 있었다. 이 연못에 가끔 천사들이 내려와 물을 휘저어 놓는데 이때 누구든지 먼저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이라도 낫는다는 전설 때문에 병자들로 만원이었다. 예수는 그 병자들 중 38년된 병자에 주목했다. 다리를 쓸 수 없는 이 병자는 천사가 내려와 물을 움직이게 하더라도 연못으로 갈 수가 없었다. 걷거나 뛰지를 못하기 때문이다. 연못에 제일 먼저 가야 치유를 받을 수 있는 경쟁 상황은 애당초 그 병자에게는 불리한 경쟁인 셈이다. 예수는 38년 동안 절박한 심정으로 자리를 지켰던 그 병자에게 이렇게 묻는다.

“네가 낫고자 하느냐?” “주여 물이 움직일 때에 나를 못에 넣어 주는 사람이 없어 내가 가는 동안에 다른 사람이 먼저 내려가나이다.” 예수는 말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2,000년이 훨씬 지난 예수 시대에도 경쟁은 존재했다. 성경 이야기를 에둘러 꺼낸 이유는 베데스다 연못 경쟁 상황이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삶의 모습과 별반 다르지 않기 때문이다. 천사에 의한 나음의 축복을 누리기 위해서는 먼저 연못에 도착해야 하는 그 경쟁 말이다. 요즘 말로 하면 선착순인 셈이다.


흔히 경쟁은 자본주의를 지탱하는 가치로 여겨진다. 경제학자 아담 스미스는 자기 이익을 추구하는 열정과 행위가 사회 전체의 이익과 조화를 이루는 방향으로 나아가며 그것으로 이끄는 것이 이른바 ‘보이지 않는 손’이라고 했다. ‘보이지 않는 손’으로 인해 자본주의 사회에서 무한경쟁은 그 근거를 갖게 됐다.

경쟁에서 살아남은 사람이 재화를 독점하는 것이 당연하며 이를 노력에 의한 성공이라는 말로 정의되곤 한다.

경쟁의 과정이 과연 공정한 것이고 합리적인 것이었냐는 근본적인 질문은 성공이라는 말 뒷전으로 밀리고 만다.

그 경쟁 속에는 ‘나’만 존재할 뿐 ‘너’와 ‘우리’는 존재하지 않는다. 마치 베데스다 연못에서 38년 동안 뒷전으로 밀려났던 병자가 이 같은 경쟁의 피해자였던 것처럼 말이다.

어쩌면 경쟁은 공정함과 거리가 먼지도 모르겠다. 최근 미국판 ‘SKY캐슬’인 대학 입시 비리 사건이 그 대표적인 사례다.

유명 TV 스타와 할리웃 배우, 기업체 최고경영자(CEO) 등 총 50여 명이 연루된 초대형 대학 입시 비리 사건의 핵심은 명문대학 입시 경쟁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부(富)라는 수단이 동원됐다는 것. 부의 유무에 따라 경쟁의 출발점이 달라진다. 상류층 부모들은 자녀가 5살이 됐을 때부터 한달에 최대 5만달러씩 쓰며 명문 사립 유치원에 보낸다. 블룸버그는 상류층의 자녀 교육 경쟁을 한마디로 가진 자와 더 가진 자 간의 경쟁, 즉 돈의 전쟁이라고 평할 정도다.

당연히 상대적으로 덜 가진 자들은 경쟁에서 밀려날 수밖에 없다. 금수저와 흙수저로 나뉘어 출발선이 다른 것, 이것이 선착순이 지배하는 자본주의의 민낯이다.

다시 예수의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예수는 38년 동안 선착순 경쟁에서 뒤쳐진 병자에게 자리를 털고 걸어가라고 했다. 아마도 그것은 예수가 베데스다 연못의 불공정한 경쟁 사회를 떠나 새로운 세상을 꿈꾸라는 것을 말하려고 했던 것은 아닐까.

<남상욱 경제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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