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시민불복종’을 다시 읽는다

2019-04-08 (월) 12:00:00 김성준 콜로라도대 정치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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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민불복종’을 다시 읽는다

김성준 콜로라도대 정치학 박사과정

미국의 작가인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언젠가 자신의 동시대(1800년대 중반)를 살고 있는 대다수 미국인들이 온전한 ‘시민’이 아니라 그저 ‘신민’에 불과하다고 비판한 적이 있다.

대다수 미국인들이 자신의 판단이나 도덕적 이성을 자유롭게 행사하지 못하면서, 자신이 속한 정치공동체에 능동적으로 기여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소로우가 볼 때 그들은 그저 생각 없는 기계처럼 국가가 내리는 명령에 복종하고 있을 뿐이었다.

소로우에 따르면, 인간을 인간답게끔 해주는 능력인 ‘양심’을 행사하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 이상 인간다운 삶을 산다고 말할 수 없다. 이 점에서 그는 “검토되지 않은 삶은 살 가치가 없다”고 말한 소크라테스의 입장을 계승한다. 양심을 행사하는 것은 인간으로서의 권리이자 의무다.


소로우는 ‘법에 대한 존중’보다 ‘양심을 가진 존재로서 인간의 근본적 권리’가 더 강조되어야 한다고 믿은 사람이다. 그의 주장에 따르면, 내가 가진 양심이 국가의 법과 충돌할 때 더 이상 내게는 그 법을 따를 의무가 없다. 그는 반문한다. 어떤 국가에 속해 있다는 이유만으로 입법자들에게 우리의 양심을 양도해야 할 의무 같은 게 우리에게 있다면, 왜 모든 인간에게 양심이 주어졌겠는가? 양심을 행사할 의무는 어떤 정치공동체에 속한다는 사실에 의해서도 소멸하지 않는다. 오히려 소로우는 신민이 아니라 온전한 시민이라면 자신의 양심을 적극적으로 행사해야 한다고 믿었다.

소로우는 자신의 양심에 비춰 당대의 미국을 불의한 국가라고 결론 내렸다. 그가 미국을 불의한 국가라고 본 이유는 두 가지였다. 첫 번째 이유는 미국의 여러 주가 아직도 인간을 돈을 주고 사고파는 노예제를 법으로 인정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는 미국이 국토를 넓힌다는 정당하지 않은 이유로 멕시코와 전쟁을 벌이고 있다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미국 정부가 전쟁을 통해 멕시코로부터 뺏은 영토에다 노예제를 도입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소로우를 더욱 분노하게 했다.

소로우는 노예제를 유지하는 정부는 그 자체로 노예의 정부일 뿐이며, 제대로 된 ‘인간’이라면 이런 불의한 정부와 조금이라도 연루되어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한 ‘수치’를 느껴야 한다고 단언했다. 더 나아가 그는 더 이상 시민에게 이러한 불의한 정부의 권위를 인정해줄 의무가 없으며, 따라서 더 이상 이 정부의 법을 따를 의무도 없다고까지 주장했다.

내 양심은 지금의 미국 정부가 인종적 불평등이나 성 불평등, 경제적 불평등과 기후 부정의(climate injustice) 문제를 더 심화시키고 있다고 말한다.

이 나라의 땅 위에서 신민이 아니라 인간으로서 사는 삶은 어떠해야 하는가. 한 번의 불복종이 추방으로 이어질 타국적의 유학생이 할 수 있는 건 무엇이 있을지 생각하게 되자 고민이 더 깊어진다. 소로우를 하릴없이 다시 읽는다.

<김성준 콜로라도대 정치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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