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바느질로 깁는 한국문화

2019-04-04 (목) 이승희 / 섬유조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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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단상

‘베이 스티처스’(bay stichers)라는 바느질 모임을 시작한 지 삼년이 넘었다. 베이 스티처스는 다양한 연령대의 베이 지역 평범한 엄마들 모임이다. 일주일에 한번씩 모여 ‘바느질’이라는 공통 관심사를 나누는 24명 멤버들은 각자 가진 능력들이 모두 훌륭해서 선생님이 전시를 기획하면 도록의 사진 촬영부터 편집, 전시회 전반의 모든 일들을 이들이 다 해결한다.

우리나라 전통 바느질 ‘조각보’를 배워보고 싶었는데 한국에 살 때는 기회가 없어 아쉬워하다가 미국에 와서 조각보 작가 이미란 선생님을 만나 아름다운 한국 비단조각들을 모아 만드는 근사한 작업을 시작하게 됐다.

그 옛날 엄격한 유교사회 안에서 밖으로의 외출이 자유롭지 못했던 양반집 여인들이 침선을 통해 여러가지 생활용품들을 만들던 것이 조각보의 시작이다. 한복이나 이불을 만들고 남은 천 조각을 잇고 수를 놓아 만든 조각보 유물들을 박물관에서 보면 여성들에게 가해진 유교적 제약에 아름다움과 섬세함으로 항거한 옛 여인들의 고결한 저항을 느낄 수 있다.

지금 내가 만들고 있는 조각보들은 그 귀한 유물들의 작은 실밥 하나조차도 흉내 내지 못하지만 땅 설고 말 설은 이곳 미국에서 한국 고유의 비단과 비단실로 바느질을 해 만든 소품들을 통해 내 주위 지인이나 외국인 친구들에게 작게나마 한국 문화를 알리고 있다.

<이승희 / 섬유조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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