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잔소리

2019-04-01 (월) 12:00:00 이보람 adCREASIANs 어카운트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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잔소리

이보람 adCREASIANs 어카운트 매니저

잔소리를 국어사전에서 찾아보면 그 뜻은 이렇다. 쓸데없이 자질구레한 말을 늘어놓음. 또는 그 말.

엄마가 요즘 나에게 자주 하는 말이 “잔소리 좀 그만해”인데 내가 엄마한테 하는 말은 사실 쓸데없는 말들이 아니다. 가수 아이유의 노래 가사처럼 ‘하나부터 열까지 다 널 위한 소리’다. 그럼 내가 하는 말은 잔소리가 아니라 다른 이름이 필요할 것 같다. 대체할만한 단어가 퍼뜩 생각나지 않으니 일단 잔소리라고 하자.

예전에는 엄마에게 잔소리를 듣는 입장이었는데 이제는 내가 반대로 부모에게 잔소리를 늘어놓고 있자니 감회가 새롭다. 어렸을 적, 엄마 아빠가 텔레비전 그만 보고 공부나 하라고 했었는데 주말 내내 한국 드라마를 보고 있는 엄마 아빠를 보고 이제는 내가 텔레비전 좀 그만 보라고 성을 낸다.


엄마나 아빠가 내게는 정말 쉬운 영어 단어의 스펠링을 물어오면 “영어 공부 좀 해”라는 말이 자동으로 튀어나온다. 사실 엄마 아빠 돈으로 공부해서 영어도 할 줄 아는 거면서 말이다.

집에서 뒹굴 거리고 운동은 하지 않는다고 혼나던 게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엄마의 군살들을 보며 운동 좀 하라고 내가 잔소리를 해댄다. 내 잔소리에 못 이겨 엄마는 동네 마라톤 클럽에 가입하여 매일 아침 운동을 나가기 시작했다. 사실 운동이 필요한 것은 나인데 말이다.

부모님은 내가 술을 많이 마시고 술병으로 고생하면 먹지도 못하는 술, 조금만 마시라는 소리를 하셨는데 이제 매일 반주를 찾는 아빠를 보며 술 좀 그만 드시라는 잔소리를 내가 하고 있다.

방 좀 치우라고 매까지 들었던 엄마는 이제 눈이 침침해서인지 설거지를 해도 깨끗하게 하지 못한다. 내 입으로 들어가는 것에는 엄청 유난을 떠는 나는 엄마에게 깨끗하게 설거지 좀 하라고 잔소리를 해보지만 반복되는 결과물에 지쳐 결국 시간이 날 때마다 내가 집안 설거지를 하곤 한다.

부모의 연락을 받지 않았다가 혼났던 적이 있었는데 이제는 내가 엄마 아빠와 통화가 되지 않으면 답답하고 화부터 난다. 이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우리의 관계가 거꾸로 가고 있음을 느낀다. 돌봄이 돌고 돌아 이제 내 차례가 된 것이다.

얼마 전에는 아빠의 환갑을 맞아 작게 잔치를 열어 드렸다. 요즘에는 아무도 하지 않는다는 환갑잔치이지만 그래도 우리 오 남매를 낳고 기르느라 고생한 아빠에게 보답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오 남매를 낳고 키우며 챙겼던 그 모든 백일과 돌잔치 그리고 수십 번의 생일들 후에 드디어 아빠도 60년 만에 그럴싸한 생일 상차림과 선물을 되돌려 받은 셈이다.

앞으로도 나의 잔소리는 그칠 줄 모를 것 같은데 날이 갈수록 엄마 아빠가 내 잔소리를 들을 날은 점점 줄어드는 것 같다. 귀찮겠지만 나도 거의 30년을 들은 잔소리이니 그 곱절은 되갚을 수 있게 오래 곁에 계셨으면 좋겠다. 잔소리 외에도 되갚을 것이 많은 삶이라 말이다.

<이보람 adCREASIANs 어카운트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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