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가페적 사랑

2019-03-25 (월) 메이 최 UC 버클리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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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가페적 사랑

메이 최 UC 버클리 대학생

얼마 전 내가 일하는 학생-부모 센터(student-parent center)에서 중간시험을 치르는 학생 부모들을 위해 구디백(goody bag)을 만들기로 했다.

수퍼바이저가 코스코에서 구디백에 담을 물건을 사오기로 했는데 급한 사정이 생기는 바람에 누군가 대신해서 코스코를 다녀와야 했다. 하필 이날따라 비가 오고 날도 추운 데다가 20분 정도 거리에 있는 코스코에 가서 장을 보고 짐을 날라야 하는 번거로움 때문인지 누구 하나 선뜻 자원하는 자가 없었다. 그 어색함을 견디기 어려워 결국 내가 가기로 자청했다.

코스코로 가는 길 내내 뭔가 손해라도 본 듯 짜증이 났다. 왜 나는 또 오지랖을 떨었을까?


기름 값도 들고, 여기저기 물건을 찾으며 불필요한 에너지를 소모하는 것도 싫었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왜 이렇게 이기적으로 변했지? 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 가족도 나의 절친 언니도 나를 두고 ‘호구’가 되기에 십상이라고 할 정도로 나는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베풀기를 좋아했고, 주변에 도움이 되는 일이라면 궂은일을 나서서 해도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그런데 어느새 내게 득이 되지 않은 일을 하면 바보가 된 느낌이 들고, 시간을 허비했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나는 매일 조금씩 자기중심적인 삶을 살아가고 있었다. 사실 이렇게 사는 것이 행복하지 않았지만 내 삶은 좀 더 편해졌고, 노력 대비 성취하는 것이 많아졌다. 그러기에 난 이러한 변화가 ‘아이‘에서 ‘어른’이 돼가는 과정이고 옳다고 생각했다.

그러다가 우연히 마틴 루터 킹의 ‘희망의 시험’(A Testament of Hope: The Essential Writings of Martin Luther King, Jr.)이라는 논문을 읽게 되었다. ‘희망의 시험’에서 킹은 아가페(Agape)적 사랑의 중요성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아가페적 사랑이란 첫째, 사랑을 베풀어도 그 사랑을 다시 돌려받을 생각이 없는 ‘무관심한 사랑‘ (disinterested Love)이다. 둘째, 내가 필요해서가 아니라 내 이웃이 나의 사랑이 필요로 하기에 베푸는 사랑이다. 셋째, 공동체를 회복시킬 능력이 있는, 수동적이 아닌 적극적인 사랑이다.

그리고 아가페적 사랑의 가장 중요한 점은 모든 삶은 별개가 아니라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인정하고, 남을 해치면 나를 해치는 것과 똑같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킹은 이러한 아가페적 사랑을 토대로 1950년대부터 시민 평등권 운동을 이끌었다. 그리고 폭력을 통해 이루어내는 흑인의 시민 평등권은 결코 정당화될 수 없다며 아가페적 사랑을 실천하기 위해 끝까지 비폭력 시위를 주장했다. 이로 인해 1964년에 흑인들이 백인들과 같은 동등한 권리를 누릴 수 있게 되었다. 킹은 이 논문을 통해 아가페적 사랑의 힘이 얼마나 위대하고, 또 우리 사회에 꼭 필요한 요소인지를 일깨워주고 있다.

킹의 말처럼 아가페적인 사랑이 오늘날과 같은 각박한 우리 사회에 너무나 필요하다는 것은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그러나 성공, 능력, 지위, 또는 재산 등으로 사람을 평가하는 사회의 잣대 때문인지 나 또한 이기적으로 사는 나의 모습이 싫으면서도 그렇게 살지 않으면 도태된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있었던 것 같다.

킹의 글을 읽고 나는 누군가와 같은 세상에 살고 있기에 내가 성공을 향해 나아가는 과정에서 주변을 돌아보지 않고 오롯이 내 이익만을 추구한다면 과연 그 성공을 정당하다고 볼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비록 쉽지는 않겠지만 나는 아직 20대이고, 지금부터 아가페적 사랑을 실천해 간다면 우리가 살고 있고 또 앞으로 살아갈 미래의 세상은 지금보다 나아질 가능성이 높고, 우리의 삶의 질도 향상될 것이라 기대한다.

<메이 최 UC 버클리 대학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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