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여성의창] 삶의 쉼을 주는 커피

2019-03-16 (토) 이승희(섬유조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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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보내온 짐 속에 반가운 커피가 들어있다. 한국 갈 때마다 들러 커피 한잔 마시고 오는 로스터리 카페에서 볶은 에티오피아산 커피콩이다. 봉지를 열어 커피향을 맡아보니 구수함과 향긋함이 코끝을 맴돌아 마음이 급해진다. 얼른 전기 포트에 물을 끓이고 커피를 가는 핸드밀에 커피 콩 두 스푼을 넣어 핸들을 돌린다. 핸드밀 안에서 갈리는 동안 커피는 나에게 제가 가진 향기를 반이 넘게 보내주니 커피를 가는 일이 참 즐겁다.

커피 내리는 얘기를 하기 전에 도구에 대한 설명을 먼저 해야겠다. 종이 필터를 끼워 커피를 걸러내는 드리퍼가 있고 커피가 내려와 채워지는 유리병은 커피 서버라 부르며. 물을 붓는 주전자는 드립 포트라 한다. 핸드 드립 커피는 주로 산지로 구분되는 커피 빈의 종류와 로스팅 정도, 분쇄되는 알갱이의 크기, 또 물의 온도에 따라 참 다양한 맛을 낸다.

한국이나 일본과 미국 그리고 유럽은 각각의 커피 로스팅 기호들이 다르다. 미국에서 내 입맛에 맞게 커피 로스팅을 하는 곳을 찾기가 쉽지 않은 것은 대부분 강하게 로스팅을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커피를 좋아하는 내게 가끔 친구들이 한국에서 로스팅한 커피를 보내주는데 그런 날은 큰 선물을 받은 것같아 화가 날 일도 다 용서가 된다.


여러 종류 드리퍼 중 하나를 신중히 골라 종이 필터를 끼우고 차를 우려 마시듯 커피를 내릴 준비를 한다. 드리퍼에 따라 나오는 커피맛도 다르기 때문이다. 드리퍼에 끼운 종이 필터에 갈린 커피 가루를 담고 드리퍼를 커피 서버 위에 얹는다. 끓인 물을 조금 식혀 드립 포트에 부어 들고 커피 가루 위에 물을 나선형 모양으로 조금 붓는다. 물을 먹은 커피가루가 빵 모양으로 부풀어 오르면 다시 나선형 모양으로 얇게 천천히 물을 붓는다. 같은 방법으로 두세번 반복한다.

커피 서버에 커피 방울이 떨어지는 소리는 빗방울 소리같고 커피와 함께 흐르는 향기는 세상 어느 향수보다 훌륭하다. 알맞게 내려진 커피를 미리 따뜻하게 데워놓은 잔에 따른다. 향이 좋은 진한 갈색 커피를 한모금 마시면 입안과 코끝에 맴도는 커피향이 그날의 힘듬과 두려움, 슬픔 그리고 그리움같은 아픈 감정들을 다독이며 쓸어내준다. 참 좋은 약이다. 나를 위해 커피를 보내준 친구와의 행복했던 시간도 추억으로 떠올리며 그 한잔을 천천히 마신다. 세상이 다시 살아갈만해진다.

<이승희(섬유조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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