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버드 오브 패시지’(Birds of Passage) ★★★★ (5개 만점)
▶ 콜롬비아 마을서 벌어지는, 탐욕과 유혈폭력 서사극, 눈부신 자연풍경 더 애틋
잘다가 화련한 의상을 입고 마을 사람들 앞에서 성인식에 참여할 준비를 하고 있다.
이창동 감독의 ‘버닝’과 함께 오스카 외국어영화상 예비후보 9편 중에 올랐다가 최종 5편 선정에서 탈락한 콜롬비아의 범죄 서사스릴러로 촬영을 비롯한 형식미와 마약밀매를 둘러싼 치열한 갈등과 이로 인한 가족과 원주민 집단사회의 몰락을 그리고 있다.
다소 길고 진행이 거북이 걸음이지만 서서히 타들어가는 눈부신 영화로 1970년대 국제 마약밀매단이 콜롬비아의 평화로운 마을을 잠식하면서 급작스런 부가 꽁꽁 뭉쳤던 가족을 무참히 파괴시키는 과정을 인종학 연대기를 다루듯이 묘사했다.
제목은 콜롬비아 북동쪽 구아히라 지역에 수천 년간 살아온 원주민들의 전설 속의 새들이기도 하고 이와 함께 마리화나를 운반하기 위해 뜨고 내리는 경비행기를 뜻하기도 한다. 이 마리화나는 미국으로 공수되는데 이로 인해 원주민들은 손쉽게 부를 획득하나 탐욕으로 인해 유혈폭력이 벌어지면서 그들을 분해하고 만다.
처음에 원주민 소녀 잘다(나탈리아 레이에스)의 성인식으로 시작된다. 다채로운 색채 속에 펼치는 음악과 춤으로 장식된 파티가 황홀하다. 잘다의 어머니 어슐라(카르미나)는 절대권력으로 마을 원주민을 통치하는 리더. 이 파티에 청년 라파옛(호세 아코스타)이 나타나 잘다에게 청혼한다. 어슐라와 라파옛의 현명한 삼촌 페레그리노(호세 빈센테 코테스)는 결혼 지참금에 대해 합의하나 술과 커피를 밀매하면서 연명하는 라파옛이 부담하기에는 과하다.
이어 라파옛과 그의 성질 급한 친구 모이세스(이온 나바레스)는 귀국해서 국내에 팔기 위해 대마초를 구하러 온 미 평화봉사단원들을 만난다. 여기서부터 원주민들은 손쉽게 돈을 벌 수 있는 대마초 밀수업에 개입되면서 순수를 상실하게 되고 그 결과 엄청난 유혈폭력과 파괴와 비극이 일어난다. 액션은 영화 후반에 발생한다.
한편 라파옛은 정글 속에서 대규모로 마리화나를 경작하고 있는 또 다른 삼촌으로 나이는 먹었으나 막강한 권력을 쥔 아니발(완 마티네스)과 손을 잡고 본격적인 마리화나 장사를 시작한다. 이로 인해 서푼짜리 밀매업자였던 라파옛은 엄청난 부와 권력을 소유하게 된다. 그리고 그는 자기 아내가 된 잘다와 잘다의 가족과 함께 오두막에서 방대한 사막 한복판에 있는 초현대식 대저택으로 이주한다.
그러나 부는 라파옛과 총질하기를 즐기는 모이세스와 잘다의 성질 사나운 오빠 레오니다스(그레디에 메사)와의 갈등과 욕심 그리고 라이벌 마약밀매단과의 충돌 등의 부작용을 동반하면서 집단과 가족의 초석이 붕괴되고 만다.
20세기 초 외국인들이 콜롬비아의 원주민 사회 속으로 파고들면서 마약과 돈과 외부세력에 의해 부패하고 마는 원주민들의 전통과 문화를 탐구한 이색적인 범죄대하극으로 두 감독 크리스티나 갈레고와 시로 게라는 이 같은 얘기를 지적이요 확실한 솜씨로 처리했다.
보기 좋은 것은 와이드 스크린 총천연색 화면. 아찔하도록 눈부신데 광대한 백사의 사막과 바다 등 자연을 큰 폭으로 찍어 그 안에서 일어나는 인간들의 우행이 더욱 절실하게 느껴진다. 연기들도 자연스럽다. 로열극장(11523 Santa Monica Blvd.) 310-478-3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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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진 편집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