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선택
2019-02-14 (목) 12:00:00
여성의창 김명수(버클리문학회원)
40년 전인 1978년 미국에 와서 3년이 지난 후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UCSF 약학대학을 다닐 때 약리학 교수님이 했던 말씀이 떠오른다.
“40대 초반 환자에게 고혈압이 있다고 의사가 인데랄 처방약을 내주었습니다. 혈압은 떨어져 정상으로 되돌아왔으나 약기운 때문인지 몸에 힘이 빠져 예전처럼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무엇보다 밤에는 발기부전까지 왔습니다. 저는 제 아내를 사랑합니다. 제가 이 약을 먹으면 약의 부작용 때문에 아내가 저를 싫어해서 떠날까 두렵습니다. 교수님, 어떻게 해야 할까요?”
막 30대가 된 나는 강의시간에 이런 이야기를 들으면서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러나 시간이 지난 이제사 떠올리니 상당히 심각한 고민거리였다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병든 배우자를 이해하고 감내해야 하지만 결혼해 부부의 연을 맺으면 육체적으로 한 몸이 되어 감각적이면서도 관능적으로 느끼는 기쁨을 무시할 수도 없을 것이다. 아무튼 그때 교수님의 대답은 이러했다.
“오래 살고 싶으면 계속 복용하십시요. 그러나 혈압이 높아 생기는 뇌졸중 등으로 마비가 와서 반신불구가 되거나, 심장마비로 죽어도 괞찮다면 복용하지 않아도 됩니다. 당신이 선택하는 쪽으로 결과는 진행될 겁니다.”
물론 40년 전보다 좋은 약이 많이 개발되었다. 당시는 혈압약이 인데랄 베타 불록커(Beta blocker) 하나뿐이었지만 요사이는 셀렉티브 베타 불록커(Selective Beta blocker) 테놀민이 개발되면서 부작용도 많이 줄었다. 또한 베타 불록커 약리 작용 이외에도 여러 가지 다른 약리 작용으로 혈압을 낮추는 약이 개발되었다. 신장이 좋지 않은 당뇨병 환자에게는 혈압과 신장에 모두 작용하는 에이시이 인히비터(ACE Inhibitor) 약을 권장하고 있다.
식생활이나 운동을 통해 혈압을 낮추는 게 제일 좋은 방법이지만 그렇게 했는데도 혈압이 있는 경우는 선택을 해야만 한다. 그리고 그 선택이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고 있는 것이다. 새삼 여러 가지 다른 일에도 얼마나 많이 선택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지 깨닫게 된다.
지금의 삶을 후회하지 말아야 한다. 불평을 하지 말아야 한다. 그런 선택을 할 수 있는 나의 의지가 있다는 것에 고마워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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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김명수(버클리문학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