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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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오로르 뒤팽의 저택

2019-02-13 (수) 12:00:00 신은주(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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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말메종 국립음악원(C.N.R de Rueil-Malmaison)에서 대학생활을 할 때 유럽 곳곳을 다녀 보았다. 유명 관광지도 방문했지만 세세한 추억이 떠오르는 곳은 오히려 사람들이 잘 모르는 장소다. 내 개인적인 이야기가 담겨서 그럴 것이다.

어느 해 여름, 첼로 전공하는 프랑스인 친구가 자기 집에 초대한 적이 있었다. 그의 부모님은 샤또에서 살고 있었는데 볼테르가 살았던 성(城)이라고 했다. 고색창연한 저택에서 환대받는 것도 기분 좋았지만 역사적 위인이 살았던 집이어서 더욱 감동이었다. 몇 백년 전 모습이 그대로 보존된 곳에서 살고 있는 친구가 부러웠다.

성 테레사의 가르멜 수도원이 있는 스페인 아빌라에서 2004년과 2007년 두번 앙상블 연주를 했었다. 2007년에는 지역신문에 난 기사를 보고 가르멜 수도회 소속 한국 신부님이 찾아왔다. 7년만에 한국인을 본다며 모국어로 대화하는 것을 감격스러워 했다. 중세 수도원의 고즈넉한 분위기는 언뜻 타임머신을 타고 옛 시대로 돌아간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무엇보다도 성곽 위에 펼쳐졌던 밤하늘을 잊지 못한다. 지금껏 그토록 현란하면서도 신비한 별들의 향연을 본 적이 없다.


방학 때는 프랑스 중부 시골로 뮤직캠프를 갔었다. 주말에 주변 관광과 음악회를 다니면서 쇼팽 페스티벌이 열리는 노앙(Nohant)도 방문한 적이 있다. 그때 바삐 둘러본 오로르 뒤팽의 저택은 요즈음에야 곰곰 다시 그려보곤 한다.

오로르 뒤팽은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3년 전 쇼팽 콩쿠르에 우승하고부터 자주 생각하게 된 사람이다. 대다수 한국인처럼 나도 그후로 더욱 쇼팽을 좋아하게 되었는데 서정적인 피아노 곡을 들을 때마다 그의 삶의 여정도 덩달아 떠오르곤 했다. 그러면서 결핵을 앓았던 쇼팽이 뒤팽과 함께 스페인 마요르카 섬에 이어 노앙에서 버텨주지 않았다면 이 주옥 같은 곡들을 우리가 들을 수나 있었을까, 아찔해졌다. 그 시절엔 결핵을 앓은 예술가들이 20대 후반에 우수수 세상을 떴기 때문이다. 그나마 피아노 협주곡 1, 2번은 20세 때 작곡했으니 다행이지만. 그러면서 연인이든 모성애를 가진 친구이건 쇼팽을 건사해준 그녀가 그토록 고마울 수 없었다.

사람들이 흔히 부르는 이름 보다는 그녀의 본명을 부르고 싶다. 편견과 구설수가 떠오르지 않기 위해서이다. 오로르 뒤팽은 조르주 상드의 본명이다.

<신은주(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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