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돼지와 농장주

2019-02-12 (화)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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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 농장’은 조지 오웰이 1945년 쓴 공산주의 풍자 소설이다. 농장주의 오랜 착취에 시달린 동물들은 인간만 몰아내면 모든 동물들이 평등하게 잘 살 수 있다는 늙은 돼지 ‘올드 메이저’의 가르침에 따라 들고 일어나 농장주를 내쫓고 농장의 주인이 된다.

그러나 기쁨도 잠시, 혁명의 주도적 역할을 했던 돼지들 사이에 권력 투쟁이 벌어지더니 결국 ‘나폴레옹’이란 돼지가 경쟁자 ‘스노우볼’을 물리치고 전권을 장악한다. 그 후 동물들은 예전 같이 노예와 다름없는 생활을 하고 돼지들은 옛날 인간처럼 이들 위에 군림한다. 나중에는 인간처럼 두 발로 걷고 회초리를 들고 다니며 위스키를 마시는가 하면 인간과 함께 파티도 연다. 결국 돼지와 인간을 분간하는 것이 불가능해지는 것으로 소설은 끝난다.

2008년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 제일 먼저 한 일의 하나가 정연주 KBS 사장을 몰아낸 일이다. 이때 내세운 구실이 재임기간 법원이 내린 세금환급 소송 조정을 받아들여 회사에 손해를 입혔다는 것이다. 당시 야당은 언론 장악 기도라며 펄펄 뛰었지만 검찰은 그를 배임 혐의로 기소까지 했다. 2012년 정연주는 대법원에서 무죄 판결을 받았고 대통령을 상대로 낸 해임 무효 청구소송에서도 이겼지만 이미 임기가 지나버려 실효성 없는 판결이 되고 말았다.


2017년 출발한 문재인 정부가 제일 먼저 한 일의 하나도 KBS와 MBC 사장과 이사진을 몰아내고 그 자리에 자기 사람을 앉힌 것이다. 김장겸 MBC 사장에게는 체포영장까지 발부했다. 상황을 파악한 윤세영 SBS 회장은 자진해서 물러갔다. 집권 여당인 더불어 민주당 안에서 방송 장악을 위한 9개항의 실행계획서가 나왔는데도 자신들은 방송 장악과 무관하다며 시치미를 뗐다.

이명박 정부가 국민의 반대를 무릅쓰고 강행한 대표적 사업이 4대강 사업이다. 많은 사람들이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자 예비 타당성 조사도 면제해 버렸다. 이명박의 4대강 예타 면제를 누구보다 비판해 오던 문재인 정부가 내년 총선을 앞두고 42조 규모의 정부사업에 예타 면제를 한다고 한다. 경실련 발표에 따르면 문재인 정부는 이미 2017년 30조 규모의 예타 면제를 한 상태여서 이것만으로도 이명박 정부 60조, 박근혜 정부 24조를 넘을 전망이다.

원세훈 전 국정원장은 2012년 국정원 직원을 시켜 조작 댓글을 달게 한 혐의로 기소돼 2018년 대법원에서 징역 4년이 확정됐다. 그가 한 조작 건수는 트위터 계정으로 29만 5,600건, 인터넷 게시판 2,100건이다. 이에 비해 최근 1심판결 결과 밝혀진 드루킹 일당의 댓글 조작은 8,840만 건에 달한다. 이들이 이런 천문학적 숫자의 댓글 조작을 하며 김경수 지사와 지속적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은 사실도 밝혀졌다.

그럼에도 원세훈 때는 ‘국기 문란 사건’이라고 펄펄 뛰던 집권 여당은 김경수가 구속되자 “적폐 세력의 조직적 저항”으로 몰아 부치고 있다. 이번 판결을 내린 성창호 판사는 박근혜에게 징역 8년을 내린 사람이다. 남재준, 이병기, 이병호 전 국정원장의 국고손실 혐의에 대한 유죄를 인정하고 김기춘, 조윤선, 최경희도 모두 구속시켰다. 적폐 세력이 이처럼 많은 적폐 세력을 잡아넣은 것은 놀랄 일이다.

지난 수년간 최순실만큼 국민들의 공분을 산 인물은 없다. 아무 것도 아니면서 박근혜와 친분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대한민국 국정을 좌지우지 했다. 박근혜와 최순실 관계는 옛날 사극에서 흔히 나오는 간신과 혼군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문재인 정부에도 아직 그 정도까지는 아니지만 비슷한 인물이 하나 있다. 영부인과 가깝다는 손혜원이다. 의도야 어떻든 간에 자기 영향력 아래 있는 지역 부동산을 다른 사람 명의로 사들였다는 것만으로도 공직자로서 부끄러워해야 할 일이다. 그런데도 손혜원은 무척 당당하다. 그가 당에 부담을 주기 싫다며 탈당 기자회견을 하는 자리에 집권당 원내대표가 따라 나온 것도 이례적인 일인데 초선의원인 손혜원이 그 어깨를 툭툭 치는 모습은 참으로 가관이었다. 여기서 한 걸음 더 나가면 최순실처럼 되는 것이다.

남의 잘못을 욕하기는 쉽지만 그러면서 닮지 않으려면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 문재인 정부와 집권 여당은 오웰의 ‘동물 농장’을 일독하기 바란다.

<민경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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