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딸은 무엇으로 사는가
2019-02-12 (화) 12:00:00
박주리(선교사)
세살 때 당시 병명조차 몰랐던 ‘윌름 종양’에 걸려 죽음의 문턱을 넘을 뻔했다. 장시간의 수술을 통해 머리 크기만한 종양을 제거했으나 방사선이 없어 치료를 포기해야 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실밥도 뽑지 않은 딸을 업고 퇴원하던 날 엄마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을 경험했다고 했다. 과산화수소수 1병으로 수술 부위를 소독하며 죽어가는 딸을 살려낸 엄마의 이야기는 슬픔과 비장함과 감동으로 엮어진 한편의 휴먼 다큐멘터리다. 정작 나는 기억하지도 못하는 인생 최대의 위기는 그렇게 엄마의 눈물과 희생으로 극복되었다.
어린시절 엄마는 남부러울 것 없는 가정에서 자랐다. 대궐 같은 집에 살면서 수시로 이웃을 초청해 접대하고 과객들에게 숙식을 제공하곤 했다. 동네 유지로 부러움과 존경의 대상이었던 상황이 기울기 시작한 것은 외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부터라고 한다. 외할머니를 잃은 후부터 웃을 일이 없이 늘 슬픔에 잠겼다는 엄마. 자기 자녀들은 그런 슬픔없이 살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평생을 사셨다. 부모를 일찍 여읜 상실감과 생활력 없고 성격 고약한 남편에게 받은 상처의 깊은 골을 오로지 자식을 향한 애정으로 메꾸며 살아 내셨다.
그런 엄마가 너무 가여워 결혼하지 않고 평생 엄마랑 살겠다던 나도 어느덧 가정이 생겨 아내와 엄마가 되었다. 그런데 결혼한 후부터 엄마를 향한 내 마음이 다소 미묘해지기 시작했다. 결혼 생활로 속상할 때면 엄마가 마음 상할까 숨기게 되고 결혼 생활이 즐거울 때면 이런 행복을 누리지 못한 엄마한테 미안한 마음이 드는 것이다.
내 나이 오십이 넘었고 이제 내가 엄마의 보호자 역할을 한다. 세살 때 중환자실에서 엄마가 면회오기만을 애타게 기다렸다는 나를 이제는 엄마가 애타게 기다리는 입장이 되었다. 면회 후 병실을 떠날 때 복도 끝까지 울려 퍼지는 내 울음 소리를 들으며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었다는 엄마는 평생 나의 눈물의 주제이다. 엄마라는 단어는 내 가슴에 눈물이 맺히게 한다. 한과 고달픔으로 점철된 돌밭 같은 인생 길을 자식이라는 더 큰 바윗돌을 굴리며 걸어온 인간 승리의 애잔함이 사무치게 느껴진다.
이제 그리 많은 세월이 남아 있을 것 같지 않은 엄마의 삶을 보며 마음이 조급해지는 것은 엄마가 아니라 나다. 시간은 자꾸 도망가는데 난 아직도 엄마의 은혜를 갚지 못하고 살아가는 딸이기 때문이다.
<
박주리(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