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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창] 그리운 할머니

2019-02-09 (토) 12:00:00 이승희(섬유조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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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빠는 열여섯에 시집을 간 할머니 김복순 여사가 마흔이 넘어 낳은 다섯째, 막내다. 아이가 안 생기는 옆집 새댁을 딱해하며 절에 가 함께 백일 불공을 드렸는데 아이는 할머니만 낳으셨다. 할머니는 그 귀한 아들과 결혼한 우리 엄마에게 각별한 애정을 보였다. 독하게 시집살이를 하고 있던 큰어머니 두분이 막내 새댁의 군기를 잡아보려 했다가 되려 할머니에게 야단만 맞았다는 얘기를 큰어머니에게 몇번이나 들었다.

여자가 시집가면 평생 물리도록 해야 하는 게 살림이니 결혼 전엔 아무것도 하지 말라며 키운 외할머니 덕에 엄마는 늦게까지 살림이 서툴렀다. 내가 어릴 때 가끔 막내아들 집에 다니러 온 할머니는 오자마자 몸빼바지로 갈아입고 집안 서랍 하나하나를 다 열어 정리하기 시작했다. 큰아버지 댁에서는 손 하나 꼼짝 안 하는 분이 “아이고야. 우째 살림을 이래 추접게 하고 사노”를 주문처럼 중얼거리며 집 정리와 청소를 시작하면 엄마는 “그렇게 잔소리 하실 거면 치우지 마시라”며 배짱을 부렸다. 그러면 할머니는 그런 엄마를 한번 흘겨보고는 부엌 싱크 안까지 깔끔하게 치워주셨다.

그리고 퇴근하고 온 아빠가 “어무이, 대구탕이 묵고 싶네” 하면 “끼리 주까?”라며 부엌으로 가서 대구탕이라 불리는 대구식 육개장을 끓였다. 할머니가 고기와 무를 수저로 냄비에 볶을 때 나던 달가닥 소리는 지금도 꼭 음악 소리처럼 내게 남아있다.


식사가 끝나면 어김없이 동생과 함께 맥주 다섯병을 사오는 심부름을 했다. 1병을 나눠드신 아빠와 엄마는 아빠가 좋아하는 노래를 서너번 부르고 나면 금세 잠이 들었고, 나머지 4병을 혼자 다 드신 할머니는 내 옆에 누워서 “내 열여섯 때 일이다… 내 열여덟 때 일이다...” 하며 당신 지나온 일들을 옛날 이야기해주듯 들려주었다. “공부가 그래 하고 싶었는데 여자라꼬 핵교를 안 보내줬다카이” 하는 할머니 이야기를 듣다가 나는 잠이 들곤 했다. 다음날 큰아버지가 모시러 오기 전 참빗으로 곱게 빗은 머리를 똘똘 말아 은비녀를 꽂고 한복으로 곱게 갈아입고 당부하는 한마디 “느그 큰어매한텐 할매가 아무것도 안했다카래이.”

엄하셨지만 따뜻했던 우리 할머니. 돌아가신 지 30년이 돼가는데 여전히 그립고 또 그립다. 가끔 정리가 안된 내 집을 보고 있자면 할머니 음성이 들리는 듯하다. “야야. 이래 집을 추접게 하고 살아 우야노.”

<이승희(섬유조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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