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베트남으로 가는 길

2019-02-08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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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들에게 가장 친숙한 베트남 고사는 ‘칠종칠금’일 것이다. 촉나라의 제갈량이 남만을 정벌하러 떠나 남만 왕 맹획을 7번 잡아 7번 풀어줬다는 이야기다. 맹획이 패배하고도 이를 인정하지 않자 잡은 뒤 풀어주고 다시 잡기를 7번 했다는 것이다. 7번 잡힌 뒤에야 맹획은 촉에 복속할 것을 약속했다고 한다.

이 이야기는 소설 삼국지뿐만 아니라 정사 삼국지와 자치통감에도 실려 있지만 이를 그대로 믿는 사람은 별로 없다. 한번 잡기도 힘든 적장을 7번이나 잡았다 풀어준다는 것은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제갈량이 7번 싸워 이긴 것이 후대에 각색됐을 가능성이 높다.

이 사건은 뒤집어 보면 베트남 인들의 끈질긴 면모를 보여주기도 한다. 대국인 중국군대를 상대로 지고 또 졌음에도 굴하지 않고 끝까지 저항했음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베트남의 원래 이름은 남월이다. 중국 남부 월나라보다 남쪽에 있어 붙여진 이름이다. 기원 전 2세기 말인 111년 한나라에 복속됐지만 그 후 1,000년 간 독립투쟁을 벌여 기원 후 939년 박단강 전투에서 승리하면서 독립국이 된다.

19세기 후반 다시 프랑스 식민지로 전락했지만 1954년 디엔 비엔 푸 전투에서 극적인 승리를 거두며 프랑스를 몰아낸다. 그 후 공산주의 확산을 막는다는 명분으로 미국이 베트남에 뛰어들어 제2차 대전 때 사용된 폭탄보다 더 많은 양을 투하했지만 결국 지고 물러난다. 식민지였던 나라 군대가 종주국 군대를 물리친 것도, 미국과 전쟁을 벌여 이긴 것도, 베트남이 처음이다. 이들의 강인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전쟁에서는 이겼지만 베트남인들은 오랜 시간 고통에 시달렸다. 곳곳에 묻혀 있는 지뢰와 고엽제 후유증 등에다 사회주의적 계획경제라는 잘못된 정책으로 국민들은 빈곤에서 헤어나지 못했다.

이들의 형편이 조금 나아지기 시작한 것은 베트남이 1986년 ‘도이 모이’라는 개혁정책을 펴기 시작하면서부터다. 시장과 외국인 투자를 허용하는 등 자유주의 정책을 시행하면서 경제는 활기를 띄기 시작했다. 2000년 이후 베트남 경제는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성장하고 있으며 2011년에는 11개 세계 성장 발전 국가 중 1위를 기록했다.

급속한 경제성장과 함께 한국과의 관계도 긴밀해지고 있다. 2015년 한국 베트남 자유무역 협정이 발효하면서 양국 간의 무역량은 급속히 증가해 이제 베트남은 중국, 미국, 일본에 이어 4번째 교역국이다. 한국 무역협회에 따르면 2020년 한국 베트남 교역액은 1,000억 달러를 돌파, 미국을 제치고 2위로 올라설 것으로 전망된다. 더구나 요즘은 ‘박항서 열풍’으로 양국 관계가 어느 때보다 좋은 상태다.

이곳에서 이달 말 두번째 미 북한 간 정상회담이 열린다. 지난해 회담이 열린 싱가포르도 무일푼에서 세계 9위의 부국이 된 나라지만 1인당 국민소득이 6만 달러가 넘는 싱가포르는 1인당 소득 1,000달러의 북한이 쳐다보기에는 너무나 높은 나라다.

이에 비해 베트남 1인당 국민소득은 2,000달러가 조금 넘어 해볼만하다. 더군다나 베트남과 북한은 한때 미국을 상대로 전쟁을 한 나라라는 공통점이 있다. 한때 적이었지만 지금은 미국과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는 베트남은 북한에게 딱 맞는 롤 모델이다. 아무쪼록 북한이 핵을 버리고 베트남처럼 국민들의 배를 불리는 일에 전력하는 나라가 되길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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