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리엔 갭’, 혹은 ‘다리엔 지협’에 대해 들어 본적이 있는가. 아마도 현지인이 아닌 다음에는
꽤나 생소하게 들릴 것이다.
북미와 남미 대륙은 총연장 3만km에 이르는 팬 아메리칸 하이웨이(Pan-American Highway)로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단 한군데 연결되지 않은 곳이 있다. 북미와 남미를 연결하는 잘록한 부분 106km에 걸쳐 도로가 끊겨 있다.
파나마와 콜롬비아의 국경지대에 있는 거대한 지협인 이 지역이 ‘다리엔 갭’(Darien Gap)이라 불리는 곳이다. 지협 전체가 개발되지 않은 열대우림으로 덮여 있어 탐험가들도 목숨을 걸고 이 길을 탐험할 정도다.
이 ‘다리엔 갭’이 세계 언론의 주목을 받게 된 것은 불법이민자들, 특히 베네수엘라 난민들의 이동루트로 각광을 받으면서다. 이 죽음의 루트가 최근 들어 또 다시 클로즈업되고 있다. 이 루트를 거쳐 미국 입국을 시도하려다가 적발된 중국인이 기하급수적으로 늘고 있기 때문이다.
미국 당국의 최근 보고에 따르면 2023년 한 해 동안 멕시코와 접한 국경을 통해 불법입국을 시도하다가 체포된 중국인은 3만7,400여명으로 집계됐다. 이는 2년 전인 2021년에 비해 무려 54배나 늘어난 수치다. 어디서 비롯된 현상인가.
2023년 한 해 동안 중국 사회를 풍미한 단어는 ‘룬(潤)’이라고 하던가. 이 ‘룬’의 알파벳 발음 표기는 ‘run’으로 도망간다는 뜻이다.
날이 갈수록 강화되고 있는 레닌주의 식 사회 통제. 그 가운데 표현의 자유조차 억압받고 있다. 시진핑 집권 3기를 맞아 심화된 현상이다. 거기에다가 ‘제로 코비드’정책 해제 이후에도 침체된 경제는 여전히 소생의 기미조차 없다.
그러자 해외로 탈출하려는 사람들이 줄을 잇고 있다. 그 선두 대열에 선 것은 수퍼 리치들이다. 2023년 한 해 동안에만 자산 규모 100만 달러가 넘은 고액 자산가 1만3,500여명이 중국을 떠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수퍼 리치들에게는 투자이민 등 합법적인 탈출로가 있다. 중산층들에게는 그런 출구가 막혀 있다. 때문에 괌, 사이판 등을 통한 밀입국 시도는 물론이고 목숨을 건 ‘다리엔 갭’ 통과를 통한 밀입국 시도도 중국의 중산층들은 마다하지 않고 있는 것이다.
말하자면 자유와 아메리칸 드림 성취를 이루기 위한 이민 러시가 이어지고 있다고 할까. 그들은 그러면 미국에 도착 후 자유를 만끽하고 있을까. 여전히 중국 공산당의 박해와 감시, 통제의 그늘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이코노미스트지의 보도다.
90년대, 특히 2000년대 이후 해외거주 중국인 수는 급격히 늘어났다. 이와 보조를 맞추어 시진핑 체제가 대대적으로 강화해 온 것은 이른바 ‘통일전선공작’이다. 그 일환의 하나가 여론조작으로 2009년 한해에만 70억 달러의 자금지원과 함께 해외의 중국계 언론 장악에 나섰다.
비밀 경찰서를 운영해 직접적 박해를 가한다. 경제적 압력, 때로는 중국 내 친척에 대한 위해 협박 등을 통해 압박을 한다. 심지어 개인의 소셜 네트워크까지 추적한다. 이런 것들이 통일전선공작의 감시와 통제 수법으로 극도로 입조심을 하는 등 미국 내 중국 커뮤니티는 점차 중국 본토와 다를 게 없어지고 있다는 것.
보다 각별한(?) 감시와 통제 대상은 중국 유학생들과 중국계 학자들이다. 중국공산당으로부터 사실상 스파이 역할을 강요받고 있어 ‘중국계’하면 먼저 의혹의 대상으로 떠오르고 있다.
그 결과는 무엇일까. 반중정서 확산, 더 나아가 아시아계 증오범죄의 증가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 이코노미스트지의 결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