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 창] 걷고 있다는 것
2019-02-07 (목) 12:00:00
김명수(버클리문학회원)
“어느 학교에 다니다 전학 왔니?” “전학? 다른 학교에 다닌 적이 없었는데요.” 물끄러미 쳐다보는 나를 향해 선생님은 당황스러워하며 기록부를 뒤적였다. “그렇구나. 2학년 후반부터 계속 학교를 못나오고 있었구나…”
명륜동 집과 골목들이 어렴풋이 떠오른다. 성균관대학에서 멀지 않은 곳이었다. 어느 여름날 내 또래 아이들이 모두 아프기 시작했다. 약을 먹으면 땀을 흠뻑 흘린 후 열이 떨어졌다가 시간이 지나면 다시 올랐다. 샌프란시스코 병원에서 일할 때 그곳 의사와 이 병에 대해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혹시 오래된 나무가 있는 숲속이나 공원에 간 적이 있었나요?” 그 질문을 받는 순간 성균관대학에서 뛰어다니다 고목 뿌리 옆에 앉아 쉬고 있던 내 모습이 스쳐 지나갔다. “오래된 나무에 서식하는 틱(Tick)이라는 진드기 때문인 것 같습니다. 라임(Lyme)병이라고 하지요. 물리면 열이 나고 심하면 근육이 마비되기도 합니다. 이건 단지 제 추측일 뿐입니다.”
혼자서만 방안에 누워 있었다. 봄이 오는지 따뜻한 햇살이 들어와 방안을 비추었다. 조무래기들의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그 소리는 음악소리보다 더 아름답게 들렸다. 움직이지 못하고 드러누워 있는 나는 비참하게 느껴졌다. “일어나서 걷고 싶습니다. 걸을 수만 있다면 아무것도 부러워하지 않겠습니다.” 감은 눈 속으로 걷고 있는 내 모습이 나타났다. 내 온몸 전체가 전율에 떨며 형용할 수 없는 기쁨에 넘치고 있었다.
그러나 눈을 떴을 때는 아직도 이불 밑의 내 몸뚱이만을 보고 있었다. 다시 간절히 간구했다. 누군가 나를 일으켜 같이 걷고 있었다. 얼마 후 눈을 떠보니 나는 실제로 걷고 있었다. “하나님 저의 기도에 응답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리고 세월이 많이 흘렀다. 삶이 너무 피곤해서 일까? 욕심이 많아 기대하는 게 너무 많아서 일까? 어떤 때는 허우적거리는 내 모습을 바라볼 때가 있다. 완벽하게 살려고 노력하는 나자신을 보면서 한계를 느낀다. 그러지 못했던 나에게 절망한다. 내 자신이 미워져 짜증나며 삶이 싫어질 때가 있다. 문득 내 다리와 종아리가 눈에 들어온다. 감은 눈 속에서 걷고 있는 모습을 보았을 때 짜릿하게 전해지던 행복감, 그렇게 전율을 느끼며 행복했던 느낌을 왜 다른 데서 찾고 있었던 것일까? 내가 가장 원하던 꿈이 실제로 이루어졌는데.
<
김명수(버클리문학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