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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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창] 아직도 자라고 있는 엄마

2019-02-01 (금) 03:55:13 이승희(섬유조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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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이 다 되어서 낳은 큰 아이. 이른 나이 출산이 아니었음에도 주위에 아이를 키워본 친구나 선배가 없었기에 다들 그렇듯 육아를 공부처럼 시작했었다. 개월수 따라 진행되는 행동 발달책, 부모의 마음가짐을 조언하는 책, 엄마란 존재를 고찰한 책은 물론 칭찬이 어떤 동물을 춤추게 한다거나 누구처럼 영어공부 안할 거냐고 물어보는 책까지 사들였다. 그러나 한참이 지나서야 책으로 배워선 안될 것들이 참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연애나 화장법, 아이를 키우는 일, 특히 엄마가 되는 일은 그런 것 같다.
모든 부모가 그렇겠지만 첫아이는 조바심 속에 키우게 된다. 마치 우리 아이만 뒤처지는 것 같다는 생각에 발육상태에 예민해지게 마련이다. 책으로 열심히 공부를 한 초보 엄마는 책에서 읽은 내용들에 맞춰 내 아이가 잘 자라고 있는가를 너무도 열심히 체크를 해댔다. 생후 6개월이 되면 아이는 이런저런 행동들을 할 수 있고 일년이 되면 이만큼의 인지기능을 갖는다라고 책에는 써있는데 내 아이는 달랐다.

두뇌 자극이 된다는 책을 보여주면 뺏어서 입으로 빨고, 시각 자극에 좋다 해서 사둔 책들을 징검다리 삼아 밟고 노는 아이는 내 예상을 벗어났다. 아이를 어르고 달래고 짜증도 내보며 그 물건들을 원래의 용도로 쓰려고 많은 노력도 했었다. 책대로 크는 아이가 없다는 사실을 큰 아이가 자라 사춘기가 되면서 깨달았다. 무식하고 무지한 욕심 많은 엄마 때문에 아들도 참 고생이 많았다.

아이가 자라면서는 하루에도 몇번씩 내 욕심을 잡았다 내려놓았다 하며 자신과의 싸움을 해오고 있다. 그리고 이제는 나도 ‘엄마를 처음 해봐서’ 이런다고 아이에게 사과도 할 줄 아는 나름 쿨한 엄마가 되었다.


미숙한 엄마라고 미안해 한 지 스무해가 돼간다. 강산이 두번이나 바뀔 만큼 긴 시간을 엄마로 살고 있는데도 나는 아직 많이 모자라다. 어설픈 모습을 보이는 엄마라 아이들에겐 미안하지만 나는 아이들과 함께 조금씩 아직도 자라고 있는 중이다.

스무살짜리 큰 아들은 막 태어났을 때도 그랬고 10살 때도 그랬듯 아직도 잘 때가 제일 예쁘다. 자는 아들의 발을 쓰다듬으며 오늘도 속삭인다. “엄마가 아까 화내서 미안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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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희씨는 미국에 온지 5년째이며 섬유 조형작가와 도자기 작가로 활동중이다. 두 아들과 사랑하고 싸우며 살아가는 삶의 이야기를 나눌 예정이다.

<이승희(섬유조형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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