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숲속에 안겨있는 평온하고 한적한 끓는 온천 마을

2019-02-0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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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가 방인숙의 동유럽 여행기 ⑨카를로비 바리(Karlovy Vary)

숲속에 안겨있는 평온하고 한적한 끓는 온천 마을

마을전경

숲속에 안겨있는 평온하고 한적한 끓는 온천 마을

온천수 나오는 곳


숲속에 안겨있는 평온하고 한적한 끓는 온천 마을

소철 가로수



테플라 강따라 양옆으로 중세 시골 풍정 닮은 마을 조성
군데군데 강둑 옆으로 온천물 쏟아져 나오는데 물반 고기반 경이로워
14세기 카를 4세가 사슴이 김 솟는 물에서 상처 치료 하는 것 보고 노천 존재 알아
온천 솟는 12군데마다 열주 세운 화랑에 정자 만든 콜로나다 있어
브리델리 콜로나다는 건물 안에 위치 간헐천처럼 1분마다 뜨거운 물 공중으로 치솟아

보고자하는 것만 본다는 관광자로서가 아닌, 보는 것만 본다는 여행자로서, 어둑신한 새벽에 나섰다. 숙소가 신시가지인지 조용한 보통의 도시모습이다. 근처에 버스정류장이 있고 옆, 뒤로 기업빌딩들이 폼 재고 있으니까. 인제 익숙한 현대도시의 풍경은 세계 어디나 엇비슷하다. 아쉽게도 꽃비처럼 날린 여정의 시간들. 여행도 인제 종반전이다.

첫 일정은 프라하의 서쪽, 120Km떨어진 독일국경부근의 온천도시 카를로비 바리(끓는 온천)방문이다. 가는 동안 영화 ‘쉰들러 리스트’를 봤다. 나는 원래 비참하거나 잔인한 장면은 감성이 영 소화를 못 시켜, 명화라는데도 여태 안 봤다. 허나 버스 안이라 선택의 여지없이 보게 됐다. 예상대로 끔찍한 장면은 많지만 감동의 울림이 깊다. 영화중반까지만 봤는데도, 비장함의 여진에 멍하다. 어느새 다 왔는지 눈앞에 현실은 평화스런 낯선 마을이다.


숲속에 옴팍 안겨있는 카를로비 바리는 평온하고 한적한 예쁜 시골이었다. 인파에 시달리던 프라하랑은 한참 달랐다. 프라하에선 ‘소매치기원정단’의 극성에 관광할 마음조차 안 들만치 각박했었다. 여기선 긴장의 끈이 끊어진 이완상태가 되어 절로 마음이 포근해진다.

독일국경에 위치한 서보헤미안 지방은 예로부터 온천으로 알려졌다. 소도시 한복판을 흐르는 테플라(Tepla)강을 따라 양옆에 조성된 마을은 중세의 고적한 시골풍정 그대로다. 테플라강은 아주 아담사이즈로 강이라기 보담 수량이 풍부한 개천정도 될까. 하여간 강둑을 따라 이어진 소담한 꽃 치장으로 수변풍경은 그야말로 예쁜 그림책이다.

넋 놓고 그림에 빠져 무심히 분주한 오리들을 보다가 깜짝 놀랐다. 시냇물이니 손가락만한 피라미정도야 있겠지 했는데, 이건 팔뚝만한 고기떼들이 얕은 물에서 정말 물 반, 고기 반 이니까. 숲속 맑은 하천에 사는 민물고기로, 라인 강에 많다는 은어랑 비슷하나, 등 옆줄에 갈색반점이 있다는 살기인가? 아니면 연어 비슷하나 짙은 농담색의 등에 검붉은 점이 박혔다는 송어인가?

두 종류가 다 있지 싶은데, “너는 누구니?” 하고 물어볼 수도 없고. 허나 분명한 건 마침 산란기라 떼를 지어 모천인 상류 쪽으로 귀향이동 중으로 보인다는 사실. 또 경이로운 점은 군데군데 강의 둑 밑에서 온천물이 쏟아져 나온다는 것이다. 물방울이 보글대며 하얀 김이 둑 위 난간까지 피어오르니까. 그럼 물의 온도가 높을 것은 자명한데 어떻게 고기들이 생존하지? 거기다 하나같이 씨알이 굵은 비만형에다 저리도 씩씩하게 역방향으로 행진하니 말이다. 풍부한 각종 미네랄섭취 덕인가? 불가사의다.

그 마법(?)의 테플강을 따라 이어진 양안의 상점과 호텔건물들, 또한 질세라 그림들이다. 일례로 벽돌건물이라도 벽에 아치형으로 홈을 파서 조그만 조각품이라도 놓았다. 벽면이나 창틀 위엔 부조나 조형물 아니면 꽃단장은 기본이다. 연립주택형의 일자집들이라도, 미색, 오렌지색, 살구색, 비취색 등 화사한 형광색으로 구별되게 칠해 요정의 집들이다. 산과 숲으로 포옥 싸였으면서도, 예술적인 조화의 미로 결코 경박하거나 튀지 않는다. 오히려 온천도시의 주변 풍정을 매력 있게 보완해준다.

신비한 보헤미안의 낙원인 아기자기한 온천도시의 탄생근원은, 14세기중반 신성로마제국황제 카를4세다. 그가 보헤미아 숲에서 사냥을 하다가, 다친 사슴이 김 솟는 물에서 상처를 치료하는 걸 보고 노천의 존재를 알았단다. 이곳 고지대에 세운 사슴동상이 수호신마냥 마을을 내려다보는 연유다. 그 후 카를 4세가 온천도시를 조성하자, 유럽휴양지로 각광을 받아 왕후나 귀족들이 즐겨 찾게 됐다. 드보르자크, 베토벤, 쇼팽, 바그너, 리스트, 브람스는 물론 괴테, 푸쉬킨, 톨스토이 등이 이 휴양지를 선호했단다. 이를테면 괴테가 베토벤과 함께 산책하며 예술을 논하고, 쇼팽이 온천수를 마시며 폐병을 치유했다고 보면 된다.

온천이 솟는 12군데마다, 열주를 세운 회랑에 지붕을 씌우거나 정자를 만든 콜로나다(Kolonada)들이 있다. Sadova 콜로나다는 드보르자크가 자주 찾아와 그의 동상을 세운 공원 옆이라 파크 콜로나다 라고도 한다. 하얀 낮은 펜스에 회랑 위를 성당건물마냥 푸른 돔으로 모양내 정자 같고 예쁘다. 이곳엔 파크 스프링과, 수온이 28,7도로 가장 차갑다는 뱀 조각품의 입에서 온천수가 나오는 스네이크 스프링이 있다. 하필 왜 징그러운 뱀인가 의아했는데, 유럽에선 허물을 벗는 뱀을 회춘과 건강의 상징으로 여겨서란다. 한국인들만 강장제로 뱀들을 요절내나 혐오하던 차라 좀 위로가 된다.


이곳의 콜로나다 중 제일 아름답다는 Mlynska(체코어로 물레방아)로 갔다. 네오르네상스양식의 긴 석조건물이다. 124개의 코린트식 기둥들이 늘어선 긴 회랑(길이132m, 폭13m)이 인상적이다. 회랑 안쪽은 상점들이고, 회랑앞쪽 도로엔 극초대형화분에 소철이나 야자나무들을 심어 이국적인 정경이다. 방문객들이 악천후라도 온천수시음엔 전연 문제가 없겠다. 회랑에 6군데나 온천수가 나오고, 누구나 광천수를 시음할 수 있도록 수도꼭지설비가 돼있다. 우리 자랄 때 마당에 있던 수돗가 같은데, 콘크리트나 시멘트가 미네랄로 인해 온통 녹이 잔뜩 슬은 듯 벌겋다. 수도위엔 물의 온도가 적혀있는데, 보통 35도에서 75도 사이인데 계속 줄줄 나오는 물에 손을 대보니 온도가 다른 게 감지된다. 온도가 낮은 광천수는 인체의 정화작용에 효과 있고, 높은 온천수는 위장병 같은 순환기계통의 이상을 치료해준다나.

허나 우리나라약수터마냥 물바가지를 비치해놓는 친절은 없다. 그러다보니 손잡이 부분을 빨대처럼 빨아 마시는 일명 ‘주전자 빨대 컵’(Lazfisky Poharek)이 필수품이 됐나보다. 그래서 회랑의 상점과 간이 노점에서 그 컵들을 대량으로 팔고 있다. 손잡이 겸 주전자주둥이가 길은 이유는, 뜨거운 물이 긴 꼭지를 지나면서 조금이라도 식은 상태로, 또 조금씩 마시게 하려고 고안 된 거란다. 필요수급에 따라 합리적인 디자인의 특산품탄생배경이다. ‘이 없으면 잇몸’이라고 손바닥으로 조금 받아 마셔보니 단연 쇳물 맛이다. 철분, 유황, 나트륨, 칼륨, 마그네슘, 칼슘, 탄산 등이 다 포함된 광천수의 맛이 오죽할까. 아무리 특효약이라도 상상불허의 맛에 더는 마실 용기가 안 났다.

브리델리(Vridelni)콜로나다는 간헐천처럼 1분마다 뜨거운 물이 공중으로 치솟는다. 지하 2500m정도에서 솟구치는 물줄기가 보통 10m에서 15m다. 퍼뜩 옐로스톤의 간헐천을 연상하곤 의당 야외에 있으려니 했다. 그런데 빌딩 같은 데로 들어가니 생경스럽다. 물론 공간을 높게 확보하고 벽면과 천장은 유리로 마감했다. 위로 내뿜어 올리는 온천수주변은 뺑 둘러 분수대를 설치했고. 하지만 건물 안에 갇힌 채 뻗어 올라가서인지 시원스럽기 보담 답답한 느낌이다. 어쩌다가 스트레스나 화를 밖으로 발산하지 못하고 끙끙대는 내 꼴이다.

트루주니(Truzni)콜로나다는 앞면의 하얀 목조기둥들 사이를 아치로 연결했다. 지붕 아래 하얀 나무 벽엔 모자이크문양으로 오려내어 마치 하얀 레이스장식인양 보이는 마법사의 집이다. 가장 오래된 온천인 이 콜로나다는 시장이 있던 곳이라 마켓 콜로나다라고도 한다. 카를4세가 치료차 사용해 카를4세의 온천수라고도 하는데 64도 정도란다.
마침 M이 이곳 명물의 하나인 웨이퍼 오플라트키(Oplatky)라는 팬케이크 모양의 와플과자를 먹어보란다. 보기엔 꼭 뻥튀기인데 붕어빵처럼 동그란 틀에다 얇고 바삭하게 구워 전병 같기도 하다. 단순한 와플 맛이려니 했는데 설탕, 아몬드, 초콜릿을 녹인 크림을 과자 두 장 사이에 얇게 발라 달콤 고소하다. 비린 온천수 시음 후에 먹는 입가심용으로 딱 이라나.

극장건물도 저렇게 예쁘네 했더니,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온천센터인 캐슬 스파(Castle Spa)란다. 성 같이 보이는데, 그 아래로 부채처럼 펼쳐진 넓은 흰 계단이 마음에 쏙 든다. 중세시대에서 16세기까진 목욕위주의 치유였는데, 현대에 와선 마시는 방식과 병행 치료효과를 높였단다. 인구는 6만 명에 불과해도, 매년 찾는 9백만 명의 관광객 증 10만 명이 치료목적으로 오는 이유다. 휴양 차 다시오면 심신치료에 진짜 좋겠다.

한국과도 인연이 있는 도시다. 1948년부터 개최돼온 5대국제영화제중의 하나인 카를로비 바리영화제가 있다. 모스크바영화제와 함께 동구권에선 권위 있는 영화제인데, 2000년에 영화 ‘박하사탕’이 심사위원 대상을 받았으니까. 아무리 아름다운 마을이라도 ‘금강산도 식후경’이다. 예쁜 식당에 들어가 현지 식인 닭다리에 살라다와 밥인데, 오묘한 마을답게 맛도 예쁘다. 사람을 치유해주는 착한 마을의 모습을 마지막으로 일별, 마음 깊숙이 저장시킨 다음 버스에 올랐다. 뺑 돌아 인제 다시 독일로 가서 밤베르크로 간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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