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LA아트쇼 화제작 추니 박의 ‘네 개의 길이 있는 검은 풍경’
▶ 치악산·시골·레드우드·요세미티… 공간을 잇는 추억과 위안
2019 LA아트쇼의 화제작은 단연코 100피트가 넘는 추니 박(한국명 박병춘) 작가의 설치 시리즈 ‘검은 풍경’(Black Landscape with Road)이었다. 하루 늦게 행사장에 도착하는 바람에 벽에 걸리는 대신 바닥에 세워둔 채 작품들이 일반 공개되었는데 관객들은 길을 걸으며 작품을 보는 묘한 느낌에 환호를 보냈다. 이 시리즈는 ‘검은 풍경-새가 있는 길’(Black Landscape, A bird) ‘검은 풍경-수양벚나무’(Black Landscape, Weeping Cherry) ‘검은 풍경-레드우드’(Black Landscape, Redwoods) ‘검은 풍경-요세미티의 불탄 숲’(Black Landscape, Yosemite) 즉 ‘네 개의 길이 있는 검은 풍경’이다.
추니 박 작가가 2016년 1월부터 그리기 시작한 프로젝트다. 지난 15년 간 작업해온 그의 시리즈 중 하나인 ‘검은 풍경’은 나뭇가지와 빽빽한 나무사이로 들어오는 빛을 표현하면서 사람들에게 풍경 너머에 존재하는 보이지 않는 공간을 느끼게 해준다.
LA아트쇼가 열리는 내내 부스를 지키며 관객들에게 그림 설명을 해준 그는 “각기 다른 네 개의 길 너머에 각자의 인생에 얽힌 추억을 되살리며 위안과 희망을 얻는다. 벚꽃나무가 있는 봄의 언덕길, 겨울 잔설이 있는 눈길, 길을 쓸고 있는 인물이 있는 대나무 숲길, 그리고 새가 앉은 나무가 있는 길이 있는 풍경을 시간을 두고 천천히 제작했다. 그러다가 미국여행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두 곳을 선택해 검은 풍경 시리즈로 제작했다. 대나무 길과 눈길이 있는 풍경을 빼고 레드우드 숲과 요세미티 공원을 기존 한국의 풍경과 연결해 새로 구상을 했다”고 밝혔다.
총 4점의 작품들로 이뤄진 ‘검은 풍경’은 한 작품처럼 연결되게 제작된 것이 특징이다. 마치 지구가 둥근 것처럼 한국의 자연과 미국의 자연이 모두 연결돼 있다는 의미다. 또, 그동안 한국의 풍경을 그려오던 추니 박씨가 미국의 풍경으로 자연스럽게 옮겨 온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는 “풍경과 풍경이 이어지는 숲은 검은 숲으로 표현되었다. 동양에서 검은 색은 모든 것을 함축한 색이라 한다. 그림과 그림사이의 검은 공간은 우주의 블랙홀처럼 시공간을 이어주는 장치”라고 설명했다.
작품별 설명을 들어보면 ‘새가 있는 길’은 한국의 강원도 원주에 있는 치악산으로 가는 길이다. 작가가 자주 찾는 곳으로 왼쪽 나무 뒤로 뻗은 개천을 따라 굽이굽이 들어가는 길이 아름답다. 오른쪽 낙엽송 숲을 따라 일직선으로 쭉 뻗은 언덕길을 넘으면 마치 내리막길이 나올 것 같다. 나뭇가지에 앉아 명상에 빠져있는 새를 통해 자연을 통해 자신의 마음을 정화하고 치유해 가자는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두 번째 마주하는 검은 풍경은 ‘수양벚나무’이다. 한국의 시골 풍경에서 쉽게 만날 수 있는 평범한 장소로, 언덕길 모퉁이를 돌아가면 우리가 자랐던 고향마을의 추억과 어머니의 기다림이 함께 있을 것 같은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언덕위에 활짝 핀 벚꽃은 우리의 마음을 설레게 만들고 새로운 봄을 알리는 꿈틀꿈틀 대는 나무와 숲은 대지의 기운을 부른다. 그리고 여러 가지 새와 뱀이 꽈리를 틀고 있는 검은 숲은 아름답지만 위험이 도사리고 있는 자연의 내면을 비유하려고 했다고 한다.
세 번째는 ‘레드우드’, 미국의 검은 풍경이다. 미르공원과 레드우드 내셔널 팍에서 거대한 레드우드를 보고 구상한 레드우드 숲은 자연에 대한 경의를 표하는 그림이다. 100미터가 넘는 2~3,000년 된 레드우드 숲에서 인간은 너무나 작고 나약한 존재였다. 자연과 시간이라는 역사가 만들어낸 그 앞에서 ‘과연 나는 어떤 존재인가!’라는 원론적인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게 되는 장소라는 작가의 느낌이 표현돼있다.
마지막은 ‘요세미티의 불탄 숲’. 불에 탄 원시림의 형태를 그대로 드러낸 숲 사이로 보이는 요세미티의 풍경을 보고 큰 충격과 감동을 동시에 받았던 작가가 잔설이 녹아 봄이 오는 눈길에 서서 해골을 내려다보는 자화상을 통해 산불로 희생된 사람들을 애도하는 마음과 더불어 또 다시 새로운 생명으로 가득 채워질 자연에 대한 믿음을 표현한 작품이다. 뼈대만 남거나 부러진 나무, 까맣게 탔거나 타다 남은 둥치, 그리고 그 사이로 보이는 요세미티의 하얀 바위산, 눈 앞에 베어진 가슴 아픈 나무들과 재로 덮힌 검은 땅 그럼에도 그곳엔 새로운 싹이 나고 연두빛 색을 띤 어린 나무들이 싱싱하게 자라 새로운 숲을 이뤄가고 있었다. 작가에게는 그 무엇보다 놀랍고 희망적인 광경이었다고 한다. 동양의 불교에선 인간이 죽음과 다시 태어남을 반복한다고 하는데 그곳은 죽음과 생명, 소멸과 생성, 절망과 희망이 함께 공존하고 있는 장소였다고. 나는자화상을 통해 산불로 희생된 사람들을 애도하는 마음과 함께 또 다시 새로운 생명으로 가득 채워질 자연에 대한 믿음을 표현하려고 하였다. 그리고 작가는 말한다. 우리는 다시 얼마의 시간이 흐르면 다시 싱싱하고 빽빽한 숲을 보게 될 것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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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