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의창] 원더우먼의 변신
2019-01-29 (화) 03:35:38
박주리(선교사)
내 나이 52세. 이십대의 나는 50대가 현실이 되리라 상상해본 적도 없다. 인생이 수동적 모드로 전환되는 연령대, 곧 찾아올 겨울을 예감하며 살아가는 늦가을 같은 인생기인 듯하다. 시대가 달라져 백세를 사는 지금은 60대도 청춘이라 한다. 그렇다 해도 후반기 인생의 막을 열어젖히면서 50대를 현재의 시간으로 맞이한 나는 마음이 꽤 복잡하다.
어린 시절, 학교 운동회를 하던 날이 떠오른다. 모두가 모여 응원하는 소리, 웃음소리, 우렁찬 함성들로 마을 전체가 떠들썩했다. 그렇게 한바탕 행사가 끝난 후, 사람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고 여기저기 쓰레기들이 널부러져 있는 모습을 보았다. 행사의 즐거운 소음들은 싹 걷혀 버리고 공허한 흔적들만 남아 뒹굴던 모습, 운동장에 서서 주위를 삥 둘러보는데 가슴속에 스산한 바람이 돌아나가는 것을 느꼈다.
어린 시절 내 꿈은 원더우먼이었다. 당시 원더우먼 열풍은 대단했다. 평범해 보이는 그녀가 위기를 만나면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변신을 한다. 빙글빙글 돌면 일반 복장이 원더우먼의 특수복으로 변하게 되고, 변신한 그녀가 해결하지 못하는 일이란 아무것도 없었다. 그 모습이 얼마나 멋있고 통쾌하던지 꽤 오랫동안 원더우먼 앓이를 했다.
내 나이 52세. 지난 20여년을 아프리카에서 살았다. 선교라는 명분을 위해 적도의 태양과 붉은 흙냄새를 벗삼아 청춘을 그곳에서 보냈다. 나름 의미 있는 삶을 사느라 애쓴 지난 세월이 후회스럽진 않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운동회가 끝난 후에 경험했던 것 같은 쓸쓸함의 흔적이 가슴속에 맴돌고 있는 것은 왜 일까? 인생 이정표가 장소와 상황의 변화로 인해 잠시 자리매김을 못하는 듯 어지럽다.
위기에 처한 원더우먼처럼 나는 빙글빙글 돌며 변신을 시도해본다. 지금까지의 옷을 벗고 새로운 모습으로 새로운 사람들과 더불어 후반기 인생 스토리를 써 내려갈 준비를 한다. 빙글빙글 돌고 있는데 작은 창 너머로 사람들이 보이고 그들과 따뜻한 차 한잔을 나누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차 향기를 가운데 두고 인생을 나누는 따뜻한 온기가 전해지길 바란다. 이렇게 나는 여성의 창 독자들과 만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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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리씨는 이화여대와 미시간주 칼빈신학교를 졸업했다. 1993-2015년, 약 22년간 아프리카 우간다 선교사로 일했다. 현재 북가주로 파송받아 선교 지원사역을 돕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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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주리(선교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