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왕의 길´ 따라 누빈 화려한 프라하의 밤 거리 황홀

2019-01-25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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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가 방인숙의 동유럽 여행기⑧프라하 (Prague) 2부

´왕의 길´ 따라 누빈 화려한 프라하의 밤 거리 황홀

클래식 카에서 본 야경 전차


유럽여행은 배낭이나 뒷주머니의 지갑 등 관광객 노린 전문털이범 조심해야
대중교통인 예쁜 전차타고 옛 향수 젖어$건물 곳곳 전쟁 상흔인 총탄자국 그대로
구시청사탑 천문시계 천동설에 기초한 해와 달의 움직임 표현 낮에도 별자리 알 수있어
광장 중심엔 화형당한 종교개혁가 얀 후스 기념비와 동상 눈길
19세기 지언진 스타보스케 오페라 전용극장은 모차르트가 돈조반니 초연

카를교를 건너 버스대기 장소로 가니 한적해서 숨이 제대로 쉬어진다. 강의 난간에 기대 건너편의 프라하 성을 사진에 담고는 버스에 올랐다. 잠시 후에 결국 사고가 터진 걸 알았다. 방금 전 내 옆에서 사진을 찍던 여자가 드디어 악명 높은 프라하에서 배낭속의 지갑을 털렸던 것. 같은 일행이 바로 내 옆에서 당하니 정말 남의 일 같지 않다. 기억을 더듬으니 사진 찍던 순간엔 행인이라곤 젊은 남자 하나였다. 그분 말로는 다리에서 쇼핑할 때부터 따라온 곳 같단다. 나는 백을 앞으로 메고, 그분은 뒤로 배낭을 멘 차이였던 것,

친구 Y가 북유럽여행당시의 얘기다. 덴마크에서 일행 한명이 호텔에 앉아 아침을 먹고 나니 의자 뒤에 걸어놓았던 백이 사라졌더란다. 여행첫날인데 여권과 비자까지 몽땅 다 분실해 혼자만 아주 어렵게 귀국할 수밖에 없었단다. 또 다른 분도 로마에서 바지뒷주머니의 지갑을 털렸던 경험담을 털어놨다. 결론은 배낭이나 뒷주머니의 지갑, 손을 떠난 핸드백들은, 당해도 속수무책인 관광객들만 노린 전문털이범들 거란 사실. 좀 전에 당한 분은 다행히 여권은 따로 간수했고 카드는 곧바로 정지시켰지만, 쇼핑할 돈은 싹 날린 걸로 상황종료 됐다. 프라하에다 오지게 세금 낸 셈 칠 수밖에. 프라하의 낭만! 그 순간 싹 물 건너갔다.


프라하엔 대중교통 수단이 예쁜 전차다. 전차라면 옛 추억이 떠올라 무조건 타고 싶던 차에 실지로 타보게 되니 감격이다. 고작 세 정거장만에 내려 아쉽지만, 모처럼 전차의 향수를 누려본 즐거운 추억이다. 버스가 좁은 골목길을 지나는데 건물 벽에 총탄자국들이 그대로다. 유럽의 나라들은 1차 대전, 2차 대전을 치른 상처들이 곳곳에 잔재한다. 그래도 6,25후 지구상에 단 하나! 참담한 분단 상태인 우리보다는 얼마나 행운인가 싶어 부럽다.

천문시계로 이름 날리는 구시청사 탑이다. TV로 봤을 때랑 달리 빈약한 볼거리에 실망스럽다. 청사를 재건중인지 건물을 온통 휘장 쳐놓고 천문시계만 보이니 더하다. 헌데도 사람들은 빼곡히 서서 천문시계 인형 쇼만 기다리고들 있다. 로마숫자로 된 원의 시계는 오늘날의 년, 월, 일, 시를 나타내고, 아래 둥근판엔 별자리, 둘레엔 천동설에 기초한 해와 달의 움직임과 12달의 농민생활상을 표현했다. 천체의 회전과 낮에도 별자리위치를 알 수 있단다.

이 시계에 숨겨진 이야기가 또 비감하다. 1140년 하누쉬란 노인시계공이 천문시계를 제작한 후, 다른 나라에서도 요청이 쇄도하자, 시의회에서 하누쉬의 눈을 멀게 했단다. 시계공이 마지막으로 시계를 만져보기를 부탁했는데, 뭘 만졌는지 시계가 딱 멈췄다. 자그마치 400년간 작동정지상태였다가, 겨우 어느 유능한 수리공 덕에 다시 가게 됐단다.

마침 정시가 되자, 죽은 듯 잠잠하던 해골인형이 오른 손에 감긴 끈을 잡아당긴다. 왼손으로 모래시계를 올려 뒤집자, 거울들은 인형이 움직이더니 위 창문 두 개가 열렸다. 창으로 12사도의 인형들이 차례로 돌아가며 등장했다. 마지막에 맨 위의 황금 수탉이 홰를 쳐 벨을 울려 정시를 알렸다. 맙소사! 겨우 30초쯤 될까? 매정스레 창문이 닫히곤 상황 끝이다. 하도 허망해 실소가 나오지만, 시계의 정확도는 신비의 경지란다. 당대 체코의 우수한 과학기술의 결정판이었다니까.

광장중심엔 교회의 타락과 면죄부판매를 비판하다 화형당한 종교개혁가 얀 후스(Jan Hus) 의 기념비와 청동상이 눈길을 끈다. 순교 500주년 기념 차 세웠단다. 건너편에 강렬한 인상의 틴 성당이 있다. 80m의 새까만 쌍둥이첨탑이 참 개성적이다. 가운데 낮은 첨탑엔 황금성배를 녹여 만든 마리아의 조각상이다. 뒤로 서광이 비치듯 그믐달마냥 화려한 황금색 철판이 독특화려하다. 석양엔 황금색이 더 진해지고 밤엔 조명으로 차가운 흰빛으로 변신, 창백하게 변한단다. 옆의 분홍색건물은 벽돌색지붕의 킨스키 궁전이다. 킨스키 백작이 만든 로코코양식으로 2,3층은 국립미술관이다. 청사건물 건너 바로크양식의 웅대한 성 니콜라스 성당엔 거대 석상들이 벽을 장식했다. 성당 안에 모차르트가 즐겨 연주하던 오르간이 남아있다. 또 그가 영면하자 추모미사가 열렸다니, 무심히 보이던 건물이 위엄 있고 무겁게 다가온다. 이렇게 광장중심으로 중세의 국보급건물들이 뺑 둘러섰다.

그때 거리에서 포장마차 같은 게 다가오고 있다. 광장에 있는 마차도 아니고 뭔가 했더니, 사람들이 양쪽으로 앉아 맥주를 마시는데 자전거를 탄 것처럼 페달을 돌리고들 있다. 일테면 이동간이 자전거 맥주점인가. 상술의 발상도 특이하지만, 관광객들은 자전거를 타고 거리를 돌아다니며 즐겁게 맥주를 마시니, 보기에도 무척 흥겹다.

광장 한쪽의 식당으로 가니 옆 건물입구에 아인슈타인의 얼굴 부조가 있다. 언젠가 그가 잠시 머물렀나보다. 여하간 뭐든지 유명인과 연결된 건 길이 기념으로 승화시켜 관광객을 불러 모은다. 한국의 관광청도 참고하면 좋겠다. 이층에서 식사하며 광장을 내려다보니 분수대 옆 가설무대에서 체코전통의상의 사람들이 민속춤을 춘다. 너무 혼잡해 정신만 산란하고, 소매치기 2호지점이라 소지품 간수에만 신경 썼던 광장이다. 이리 한 발짝 떨어져서 내려다보니 비로소 광장과 유적 급 건물들의 고아함이 눈에 들어왔다. 인간관계도 때론 거리를 둬야 참모습이 보이듯 말이다.


식사 후 니콜라스 성당 옆과 박물관 사이의 거리를 걸었다. 파리의 샹젤리제를 본 딴 일명 샹젤리제 거리다. 양편엔 가로수들과 유수의 명품매장들이 쭉 포진했다. 그런데 오른쪽 바닥은 아스팔트고 왼쪽은 돌바닥 길로 구분지어진 데엔 배경설명이 필요하다. 프라하민주화과정의 역사인 ‘프라하의 봄’때, 소련탱크들이 여기까지 쳐들어오는 바람에 돌들이 다 튕겨나갔단다. 그 아픈 상처를, 기억을, 상기하고자 다르게 복구했단다.

샹젤리제 거리 끝에 범상치 않은 건물이 스타보스케(Stavaske)라는 오페라전용극장이다. 19세기에 지어진 네오클래식 건물로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극장 중의 하나다. 모차르트가 돈조반니를 초연하며 직접 지휘하고 피아노연주를 했던 곳이다. 일 년 내내 돈조반니 공연이 이어져 돈조반니 극장으로도 불린다. 한데 극장 앞에 시커멓고 괴이한 조각상이 있어 흠칫 놀랐다. 까만 얼굴이 윤곽만 있고 구멍이 뚫린 데다 시커먼 망토를 뒤집어 쓴 형상이 하도 음산해서다. 해골 같아 섬뜩한 ‘얼굴 없는 유령’이란 상반신상이다. 모차르트가 그의 말년인 31살 때 요양 차 프라하에 머물렀다. 시민과 백작들이 그를 극진히 돌봐준 성원에 보답 차 모차르트는 돈조반니를 창작했다. 모차르트를 지극히 아껴 이 극장을 건립한 백작이, 시민들과 함께 보은의 선물로 이 청동상을 제작해 모차르트에게 주었다. 그가 고향으로 떠날 때 무거워서 못 가져가고 극장에다 기증했다. 나중에 짤츠부르크에서도 이 청동상을 모작해놨지만, 원본은 이거니까 ‘가치 있는 유령’인 셈이다. 극장은 또 영화 ‘아마데우스’촬영지로도 유명한데, 감독이 체코출신이라 빈이 아닌 프라하에서 찍어서였다.

저녁메뉴가 돼지갈비에 흑맥주인데 흑맥주 맛이 쓰지 않고 넘기기 수월하다. 세계에서 맥주를 제일 많이 생산하는 나라는 당연히 독일이지만, 제일 많이 소비하는 나라는 체코란다. 맥주 값이 물 값 정도라나. 더 싸다나. 하여간 그렇단다.

호텔로 와서 짐을 풀고 클래식카를 타고 프라하 야경감상에 나섰다. 낮에 관광할 적에 옛날 영화에나 나오던 올드 카들이 많이 다녀 이상하게 여겼었다. 그게 관광객들을 위한 올드 카 라이드였다. Y와 H랑 같이 마음에 드는 형의 차를 골라 탔다. 각기 다른 차종을 탄 일행들과 일렬종대로 달리다보니, 멋진 승리의 카퍼레이드가 따로 없다. 오픈카에 앉아 관광털이범걱정도, 더위도, 다 잊은 채, 백만 불짜리 강바람을 맞으니 하늘 나는 기분이다. 블타 강변에 우뚝한 프라하성의 야경은, 조명발로 동화나라의 성이 별나라에 떠있다. 아니 ‘어린 왕자’가 사는 성 같다. 프라하의 시가지, 강변, 광장, 유적지등 낮에 다 봤던 곳들이지만, 조명화장으로 완전 변신을 이뤘다. 광장의 틴 성당은 과연 하얀 조명발로 창백한 아름다움의 표본이다. 프라하의 얼굴 평가점수는 밤이 훨씬 더 화려하고 멋지다.

우리들은 오밤중에 그야말로 타임머신을 타고 중세로의 여행시간을 가졌다. 카렐 교에서 화약 탑, 시청광장까지, 즉 구시가지에서 프라하 성으로 가는 길을 ‘왕의 길’이라 한단다. 그런데 우린 왕의 행차처럼 멋진 오픈클래식카를 타고 왕의 길을 누볐으니, 환상의 밤나들이 아닌가. 내 생애의 나이테 속에 곱디고운 추억으로 아로새겨졌을 만큼.
내일이면 세계적으로 아름답다는 프라하를 떠난다. 솔직히 지금 심정으론 작별의 아쉬움과 미련보다는 얼른 떠나고 싶다. 군중들과의 부대낌과, 소매치기조심에 전전 긍긍하다보니, 얼른 조용한 곳으로 가고만 싶다. 여행이란 무조건 아무런 스트레스나 긴장 없이, 안전보장이 우선이라야, 즐거움이 수반되니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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