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저 컴퓨터 하는 사람입니다”

2019-01-21 (월) 12:00:00 이보람 adCREASIANs 어카운트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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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 컴퓨터 하는 사람입니다”

이보람 adCREASIANs 어카운트 매니저

“저 컴퓨터 하는 사람입니다.”

본인의 소개를 이렇게 하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우리는 그의 짧고 강렬한 소개에 깔깔깔 웃었지만 그 어느 소개 멘트 보다 그의 자기소개가 머릿속에 오래 남아있다.

업무로 만난 사이가 아니었는데도 자신의 분야로 자기소개를 하는 그를 보며 자신의 일에 대한 자신감과 애정이 느껴졌다. 그는 수줍음 많은 사람이었지만 컴퓨터 이야기를 할 때면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고 자신감이 넘쳤다. 자신의 일을 사랑하고 정말 그 일 자체가 자신의 일부임을 맘껏 표현했다.


나에겐 생소한 분야이지만 그의 이야기를 들으며 고리타분해 보이기만 했던 소프트웨어 엔지니어라는 직업이 제법 멋지고 보람된 직업임을 짐작할 수 있었다.

얼마 전 텔레비전에서 배우 이순재를 다룬 다큐멘터리가 방영된 적이 있다. 소위 국민배우인 그의 일상을 엿볼 수 있는 프로그램이었다.

남들은 은퇴하고도 한참 후인 85세의 나이에도 여전히 활발하게 작품활동을 하는 배우로 또 후학을 양성하는 스승으로 그는 하루를 분단위로 쪼개며 살고 있었다.

그는 작품활동에 도움이 되기 위해 틈틈이 운동으로 체력을 기르고 여러 캐릭터들을 소화하기 위해 한참 나이 어린 후배와 제자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고 교제한다. 대본 암기에 도움이 되고자 미국의 역대 대통령들의 이름을 암기하고 사전과 책을 들여다보며 계속 공부하는 그에 모습을 보고 있자니 한참 어린 나이에 편히 앉아 텔레비전을 시청하고 있는 내가 부끄러워졌다.

우리는 무엇을 하는지가, 어떤 타이틀을 가지고 있는지가 중요한 시대에 살고 있다. 직업은 그 일이 가져다주는 경제적 보상, 그리고 사회적 지위에 의해 가치가 매겨지곤 한다.

자신의 일이 어떤 사람에겐 자랑스러운 일이 되기도 하고 어떤 이들에겐 죽지 못해 하는 일이 되기도 한다. 돈을 아무리 많이 벌고 선망 받는 직업을 가지고 있어도 일에서 오는 부담과 스트레스로 본인의 일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들도 있다.

반면, 남들 보기에는 보잘것없는 일이지만 소명의식을 가지고 열과 성을 다해 일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이 있기 때문에 우리 사회가 돌아가고 여러 사람들이 그 혜택을 누린다.


살면서 몇 가지 직업을 가졌고 이를 통해 밥벌이를 해오고 있지만 나는 컴퓨터 하는 그처럼 자신 있게 내 일을 소개했던가. 나 자신의 소개를 대신할 만큼 나는 그 일들을 사랑하고 정말 즐겼는가. 이순재 할아버지처럼 먼 훗날까지 저렇게 열정적으로 내 일을 즐기며 일할 수 있을까 하고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 보았다.

그렇지 못한 때가 더 많은 것 같고, 자신 있게 그럴 수 있겠다고 답하지도 못할 것 같다.
프리드리히 니체는 “직업은 삶의 근간이다”라고 했다. 일은 단순히 돈벌이가 아닌 그 이상의 것인데 나는 왜 꼬박꼬박 나오는 월급만 기다리며 스스로 월급쟁이로 전락해버렸는지 모르겠다.

이제는 조금 더 내 일을 사랑하고 즐기는 내가 되어야겠다. 그리고 훗날 나도 나의 소개를 “저 글 쓰는 사람입니다”라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날이 오도록 열심히 쓰고 또 써야겠다.

내게 큰 가르침을 주고, 지금도 어디에선가 ‘컴퓨터 하는 사람’으로 살고 있을 그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한다.

<이보람 adCREASIANs 어카운트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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