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직업의식

2019-01-14 (월) 김미소 펜실베니아 주립대 응용언어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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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업의식

김미소 펜실베니아 주립대 응용언어학 박사과정

겨울방학을 맞아 한국에 잠시 머무는 동안 목감기를 심하게 앓게 되었다. 집 앞 동네 병원을 찾아가 나오지 않는 목소리를 쥐어짜 이름을 말하고 접수를 끝냈다. 그리고는 소파에 앉자마자 간호사가 이름을 불렀다.

“아, 어슬렁어슬렁 걸어가서 바로 의사를 만날 수 있는 의료 시스템이라니.” 새삼 감동을 느끼며 진료실로 걸어가 앉았다.

의사는 50대쯤 되어 보이는 중년남자였다. 걸쭉한 대구 사투리로 반말과 존댓말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어투를 구사하는 분이었다. “어데가 불편한교?” “열은 없는교?” “가족 중에 독감 걸린 사람은 없고?” “언제부터 캤는교?”


쇳소리가 섞인 목소리로 질문 하나하나에 성심성의껏 대답했다. 그 와중에 귀에는 체온계가 꽂혔다 나갔고, 목 안 소독도 끝났다.

목에 대한 이야기는 1분이나 했을까, 타닥타닥 키보드를 두드리던 의사가 검지를 들더니 눈으로 좇아 보라고 하고는 양옆으로 흔들었다. 새로운 최면방법인가, 하고 생각할 새도 없이 눈동자를 좌우로 움직여 손가락을 좇았다.

이번엔 의사가 기다란 막대기를 꺼내서 내 어깨 양옆에 수평으로 대고, 코 쪽에 수직으로 대면서, “환자분, 이기 이기 지금 안 맞아요, 목이 다 틀어졌고. 왼쪽 어깨 말렸고 오른쪽 어깨 내려갔고. 턱선 왼쪽이 더 짧고 얼굴 왼쪽 오른쪽 대칭 안 맞고. 턱관절 왼쪽으로 비틀어졌고. 이거 지금은 별 문제없어도 안 바로잡으면 나중에 나이 들면 안 좋아요.”

나는 왼쪽 어깨에 만성통증을 달고 살고, 왼쪽 턱관절에서만 소리가 딱딱 난다. 어떻게 날 쓱 보기만 하고 아셨을까? 눈이 휘둥그레졌다. 발레만 3년 넘게 해온 터라 바른 자세를 잡는 데는 나름대로 일가견이 있다고 생각했는데, 별로 그렇지 않았나 보다.

그 이후로 스트레칭 방법 두 가지와 어떤 근육을 마사지해서 풀어줘야 하는지도 배웠다. 왼쪽으로 누워서 자는 버릇을 고쳐야 한다는 것도 지적받고, 왼쪽으로 자더라도 어깨에서 목까지의 길이보다 베개의 높이가 더 높아야 어깨가 말리지 않는다는 것도 배웠다.

목감기 때문에 아무 생각 없이 동네 병원을 찾았지만, 나도 몰랐던 어깨통증의 원인과 교정하기 위한 스트레칭 및 생활습관을 모두 배운 셈이 되었다.

병원을 뚜벅뚜벅 걸어 나오며 생각했다. 의사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목감기로 찾아온 환자니 적당한 처치와 처방을 내리고 보냈으면 족했을 텐데, 어깨가 비뚤어진 걸 지적해 주고 교정법을 알려줬다. 본인에겐 아무런 이득도 없는데도 시간과 노력을 일부러 할애해 줄 수 있는 마음은 어디서 생기는 걸까? 본인이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의사로서 직업의식을 십분 발휘한 게 아닐까.

다가올 새 학기를 생각한다. 대학생 대상, 대학원생 대상 강의를 각각 하나씩 맡게 되었다. 새롭게 만나는 학생들에게 나도 시간과 노력을 들여 직업의식을 촘촘히 발휘할 수 있을지, 또 그 결과로 긍정적인 결과를 이끌어낼 수 있을지.

새해 동안 즐겁게 성찰해 볼 과제로 남겨두기로 했다.

<김미소 펜실베니아 주립대 응용언어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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