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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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을 사이에 두고 ‘부다’와‘‘페스트’ 지구로 나뉘어

2019-01-11 (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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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필가 방인숙의 동유럽 여행기 ⑦ 헝가리 부다 페스트(Budapest)

강을 사이에 두고 ‘부다’와‘‘페스트’ 지구로 나뉘어

어부의 집에서.

강을 사이에 두고 ‘부다’와‘‘페스트’ 지구로 나뉘어

강과 마을



오스트리아에서 멀어질 수록 도로의 차들이 일제나 한국차 눈에 띄어
헝가리 국민 85%이상이 몽고족 일파인 흉노족인 마자르족 후손
순한 육개장 비슷한 ‘굴라쉬' 스프 우리 입맛에 딱 맞아
부다 지구는 녹음 짙고 유서깊은 건물 즐비
페스트 지구는 중세이래 상업·예술·음악 중심지

헝가리(Hungary)로 가는 여정, ‘Gloomy Sunday’란 여운 짙은 영화를 봤다. 화면으로 처음 접한 헝가리가 아름답다. 가슴에 스며드는 주제곡 굴루미 선데이가 원체 유명하다. 영화에도 이 음반이 발매되자 사람들이 선풍적으로 자살하는 내용이 나온다. 노래에 잠긴 애잔함과 묘한 마력으로 인해 당시 헝가리의 자살률을 세계 1위로 끌어올렸다니까. 지금은 한국에게 1위 자리를 양보해 진짜 안타깝고 유감이다. 우린 그런 류의 노래도 없는데 말이다. 아무리 현실이 궁박해도, 사회적 억압과 차별이 여전히 존재해도 이건 아니다. 자살률이 OECD국가 중 1위인 건, 정말 심각한 사안이다.


도로의 차들이 오스트리아에서 멀어질수록 독일차가 뜸해지고, 대신 일제차나 한국차가 눈에 띈다. 도중에 겪은 화장실 에피소드다. 유럽은 화장실사용에 50센트나 75센트, 비싼 데는 1유로다. 야박하게도 공짜화장실은 언감생심이다. 작은 쇼핑몰 델리에서 지하화장실로 가니, 지하철처럼 동전을 넣어야 가림 쇠가 돌아간다. 마침 2유로 동전뿐이라 그걸 넣으니, 유로가 아닌 난생 처음 보는 헝가리동전과 1불 쿠폰이 나왔다. 델리가게서 돈을 보태 뭘 사면 화장실비 1불을 빼준다는 증표다. 이 나라 외엔 무용지물인 헝가리동전과 공짜(?)쿠폰을 써버리려고 일행들은 뭣이든 샀다. 교묘한 장삿속이자 계산법인 헝가리화장실문화다.

저녁은 헝가리음식인데, 돼지고기와 구운 감자요리는 독일이나 오스트리아랑 비슷해도 스프는 제일 맛있다. 쇠고기, 양파, 토매토를 넣은 굴라쉬다. 독일이나 오스트리아스프처럼 밍밍하지 않고 색깔도 붉고 약간 얼큰하다. 순한 육개장 비슷해 얼추 우리 입에 맞는다. 허긴 헝가리인 85%이상이 아시아 기마민족인 몽고족일파인 훈족(흉노족)인 마자르족의 후손이다. 얼굴도 희지 않고 갈색의 머리와 눈동자에 몽고반점을 갖고 태어난다. 헝가리란 뜻도 훈족(Hun)대평원(Gary),즉 훈족의 땅이다. 성명도 아시아인들처럼 성을 먼저 쓴다.

지형학적으로 무려 7개국과 인접, 국경길이가 2242Km다. 그런 연유로 수도 없는 외침에 시달렸던 나라사정이 우리랑 유사하다. 소국으로서 주변 열강들에게 시달렸던 시련이란 시련은 우리나라마냥 죄다 겼었다. 1944년에도 소련의 공격으로 도시가 파괴되는 아픔 끝에, 40년 넘게 소련위성국이었다. 1969년 동유럽국가중 일착으로 철의 장막을 걷어내곤, 빠르게 변화해 인기관광지로 거듭 났으니 대단하다.

강을 사이로 부다와 페스트로 나뉘었다가 1873년에 합해졌다. 우리나라의 참담한 현실과 비교돼 부럽다. 부다는 녹음이 짙고 중세, 18세기, 19세기의 유서 깊은 건물들로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동유럽의 파리’라고 불리는 이유다. 부다페스트에 거주하던 20만 유대인중 삼분의 일 정도가 홀로코스트 희생자란다. 영화 ‘굴루미 선데이’의 장면과 교차된다.

밤에 다뉴브(도나우)강 유람선을 탔다. 도나우강은 독일 동쪽계곡에서 발원, 유럽을 동서로 가르며 10개국을 관통, 장장 2850Km나 흘러 흑해로 빠진다. 다리들과 강 연안 건물들이 전부 황금빛 옷으로 갈아입었다. 밤에는 휘황찬란한 야경으로 ‘잠들지 않는 도시’라더니 과연 맞다. 왜 중부유럽의 최고 도시라는지 이해된다. 검은 강물 위에 뜬 황금다리들이 어찌나 멋진지 목이 메어올 지경이니까. 도나우의 진주, 도나우의 장미라 하게도 됐다.

유람선에선 한국말 해설이 나온다. 파리의 세느강 야경보다 주변 풍광이 더 고담하고 멋지다. 순간 한강변의 아파트 밀림 숲이 떠올라 숨이 막힌다. 한강의 자태만큼은 세느강, 템즈강, 도나우강에 절대 빠지지 않는데. 아니 더 크고 운치 깊기에 아쉽다. 이국의 밤, 친구들과 오순도순 배안에 앉아 상큼한 강바람에 머리칼을 날리며, 서비스용 레드와인을 마신다. 이런 낭만이 없다. 우리 모두들 누구인지조차 잊은 채 행복해서 호호거렸다. 이 시간들은 각자의 추억조각보에 영원히 곱게 아로새김 될 것이다.

다음날 새벽, 시간이 눈처럼 쌓여 어느새 여정이 후반전이 됐지만, 추억을 늘리려고 탐색에 나섰다. 현대식호텔 옆에, 파르테논신전마냥 굵은 이오니아식기둥들로 고대 박물관타입인데 폐쇄된 채다. 뒷마당도 원산폭격을 맞은 어수선한 요새 터다. 폐허에 풀꽃들만 무성해 전쟁영화 찍고 버려진 세트 꼴이다. 아픈 역사를 의식한 산증거로 남겼나? 반대쪽엔 고적한 중세교회당이다. 숲가엔 홈리스 남자도 있고. 고층빌딩과 전쟁의 상흔, 중세교회, 양극화된 어두움까지 공존하는 헝가리의 현실! 마음이 혼란스럽다.


건국 천년을 기념해 1902년에 완성된 ‘어부의 요새’로 갔다. 넓고 하얀 계단서부터 완전 신 로마네스크 양식의 동화성이다. 7개의 고깔 탑이 회랑으로 연결돼있고, 테라스, 회랑, 탑이 새하얀 석회암이라 더 예쁘다. 고깔모자가 7개인 이유는 나라를 세운 마자르족의 일곱 부족을 상징해서다. 이름의 유래는 어부조합이 있던 자리에 어부들이 왕궁수호 차 민병대를 조직, 성채를 축조하고 지켜서다. 석조 상당부분이 옛 왕궁의 잔해란다. 고깔모자 안에서 보는 아스라한 푸른 도나우강, 벽돌색 지붕의 그림 같은 집들은 피안의 세계다.

옆에 근사한 성당이 마차시(Maty’s)다. 13세기에 로마네스크양식으로 짓고 14세기에 고딕양식으로 재건했다. 지붕의 무늬타일이 이슬람 고유무늬인 아라베스크라지만, 실지는 헝가리의 전통문양이다. 왕들의 결혼식과 대관식장소고 ‘성모마리아 기적’의 장소로도 알려졌다.

요새성곽 끝에 대통령집무실과 부다 왕궁이 있는데 입장금지다. 페스트가 다시는 창궐하지 않기를 기원하는 삼위일체 탑만 있다. 탑 위 독수리(?)상은 황실문장으로 매 과의 Tural bird라는 전설속의 새란다. 궁 건너 철망이 쳐진 넓은 공터엔 폭격 맞은 콘크리트의 잔해들로 어수선하고 황폐하다. 전쟁각성용으로 그냥 두나? 어! 뜻밖에 새 빨강 양귀비꽃들이 흥망성쇠의 덧없음을 고하는 양 ‘황성옛터’에서 하늘댄다. ‘황성옛터’ 노래구절이 입에 맴돈다. 옛 전쟁터에 꽃이라! 우리의 비무장지대(DMZ)도 이렇겠다는 사실이 퍼뜩 떠올려진다. 한없는 허무와 안타까움에 마음이 쓰려온다.

강을 사이에 두고 ‘부다’와‘‘페스트’ 지구로 나뉘어

자유의 여신상


140여 년 전 요새와 감옥으로 지어졌던 부다 지구의 치타델라 요새다. 19세기 오스트리아 지배 하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하자, 오스트리아가 진압 후 군대를 주둔 감시했던 곳이다. 그 성벽을 끼고, 부다페스트전망대라 일컫는 해발 235m바위산 겔레르테 언덕의 Gellert Hill And Statue라는 자유의 여신상을 보러갔다. 파리 세느강의 자유의 여신상이 뉴욕여신상에 비해 엄청 작아 웃음이 났었기에, 그런 아류려니 했다가 깜짝 놀랐다. 유람선 야경 때, 언덕 위에 치마를 휘날리며 머리 위로 물고기 같은 걸 치켜든 여자동상을 보고 참 궁금했었다. 잔다크나 유관순열사 같은 애국전사로 추정했었다. 그런데 바로 그 동상이었고, 또 엄청나게 거대하니까. 우리의 남산 격인 동산에는 여신상 외에 구석에 대포도 있다.

이 동상은 연고도 깊다. 2차전 때 나치가 치타델라에 대포를 집중 배치해 부다페스트를 폭격했단다. 왕궁이며 다리와 구시가지가 다 폐허로 변했다. 그렇게 점령당했던 헝가리를 해방시켜준 나라가 소련이다. 그 때 독일 전(戰)에서 전사한 소련군들의 위령비로 세웠다. 그런데 나중에 소련의 위성국신세로 전락했으니 참 기구하다. 동유럽 혁명 후 소련군동상은 당연히 철거됐고, 이름도 ‘자유의 여신상’으로 바뀌었다. 우리만큼 파란만장한 역사가 포개진 여신상 보는 기분이 착잡하다. 무심하게도 저 멀리 페스트 지구와 강은 벅찰 만큼 아름다운 조화다. 과거 전쟁의 아픔은 싹 잊은 절대 평화다.

어젯밤, 380m케이블에 수천 개의 전구가 사슬을 이은 듯 황홀하던 Chain Bridge란 사슬교세체니 다리다. 1849년에 부다 와 페스트를 이어준 최초의 다리다. 2차전 당시 독일 군이 폭파해 1949년에 재건했다. 보행자전용은 아니지만 양편에 인도가 있다. 유래는 세체니란 귀족이 페스트지역에 출타 중, 부모님이 위독하단 소식에도 악천후라 배가 못 떠 임종을 못 지켰다. 다른 사람들은 그런 아픔을 겪지 말라고 세웠다니 ‘효자다리’라면 딱 맞을 사연이다. 양쪽에 포효하는 사자상의 입안에 혀가 없다. 사자상의 조각가가 자화자찬하다가, 한 꼬마가 사자의 혀가 없다는 사실을 지적하자, 수치심에 다리에서 자살을 했다나. 사람들은 사자 혀가 없는 걸, 가진 자들은 서민층에게 말을 삼가라는 뜻으로 해석했단다. 즉 갑들은 절대 ‘갑질’하면 안 된다는 것. 동감이다. 절대로 옳지 않으니까.

페스트 지구는 중세 이래 상업, 예술, 음악의 중심지다. 헝가리안 랩소디, 랩소디 2번이 유명한 세계적인 음악가 리스트 페렌츠의 고향이다. 어제 야경으로, 페스트지구에서 제일 멋진 위용을 뽐내던 건물이, 영국의 빅벤 의사당에 이어 세계서 두 번째로 큰 국회의사당이다. 건국 천년기념의 건축설계공모전당선작이다. 민족적 자긍심으로 1887년 착공, 건축자재도, 기술도, 오로지 헝가리만의 힘으로 1902년에 네오고딕양식으로 완공했다. 40Kg의 금장식왕관이 있고, 외벽엔 역대 대통령들 동상, 지붕엔 일 년을 상징한 첨탑356개가 있다. 중심에 96m의 돔과 양쪽 탑, 기둥들이 아름답다. 앞의 고슈트 광장은 1956년 민주화혁명당시 대학생과 시민들이 소련총탄에 무참히 쓰러졌던 뼈아픈 장소다.

플라타너스 가로수로 샹젤리제라는 안드라시 거리에, 1896년 런던에 이어 세계서 두 번째로 지하철이 개통됐다는 건 좀 의외다. 유럽중심국이자 중부유럽 최대도시였다는 게 맞나보다. 하여 2002년 부다 성지와 지하철까지 포함한 안드라시 거리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이 됐다. 그 거리에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는 넓은 영웅광장이 있다. 좌우편에 헝가리 왕들과 영웅들의 동상이, 로마의 베드로성당마냥 광장에 타원형으로 쭉 늘어서있다. 중앙 밀레니엄기념탑 위 대천사 가브리엘동상이 광장의 수호신이다.

유심히 차들을 보니 번호판들이 유별나다. 노란 별 12개가 있는 유럽연합기가 왼편에 세로로 있고, 다음에 헝가리면 H, 체코면 C, 이런 식으로 소속국가의 이니셜을 표시하고 나서, 숫자나열이다. 유럽 국가들이 유럽연합공동체를 얼마나 아끼고 중하게 여긴다는 증거 아닐까. 그 덕에 달라보다 비싼 유로를 바꾸느라 손해 보는 기분이지만…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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