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중립적 규칙이라는 환상

2018-12-24 (월) 김성준 콜로라도대 정치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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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립적 규칙이라는 환상

김성준 콜로라도대 정치학과 박사과정

아무래도 한국보다는 덜 빡빡하겠지만, 미국에서도 용모단정을 교칙으로 정한 고등학교들이 꽤 있다. 특히 기부금에 대한 재정의존도가 높은 학교들일수록 학생들에게 ‘존중받을 만한’ 복장과 태도를 갖출 것을 강력하게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학교에 기부금을 내달라고 캠페인을 벌일 때 학생들의 단정한 외모가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얼핏 용모단정이라는 교칙 자체에 성차별적, 인종차별적 요소가 있을 거라고 상상하는 게 힘들지 모르겠다. 사실 용모단정만큼 분명하고 객관적인 규칙이 어디 있겠는가? 단정하게 교복을 차려입은 채 수업을 열심히 듣는 학생들의 모습을 기부자들에게 공개하면서 학교재정을 더 탄탄하게 만들려는 게 무엇이 문제겠는가? 게다가 앞으로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갈 학생들에게 존중받을만한 모습을 갖추라고 학교가 요구하는 게 무엇이 문제겠는가?

그러나 이 교칙으로 징계를 받는 사람들이 누구인가를 보자. 머리를 곱게 땋은 흑인 학생이나, 흔하지 않은 머리 색깔을 가진 비백인 학생, 같은 옷을 입어도 가슴이나 엉덩이가 부각되어서 남학생들의 학업을 방해한다고 간주되는 여학생들, 남자인지 여자인지 불분명한 복장을 한 성소수자 학생들이 주로 이 교칙에 의해 징계를 받는다.


대개 징계는 수치스러운 티셔츠를 하루 종일 입고 다닌다든가 일정 기간 다른 학생들과의 교류를 금한다든가 하는 ‘망신주기’의 방식으로 이뤄진다. 조금은 무시무시하게 들리겠지만, 미국의 고등학교에서는 안전요원이나 경찰이 규율에 순응하지 않는 학생을 물리적으로 진압할 수도 있다. 그래봤자 아직 미성년자인 학생들을 말이다.

‘존중받을 만한’ 복장과 태도를 갖추지 못했다는 이유로 누군가가 봉변을 당하는 걸 본 학생들은 특정 인종적 정체성이나 성정체성을 부정적이거나 열등하게 여기는 가치관을 내면화하게 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앞으로 부당한 대우나 차별을 당하고도, 그 원인이 차별적인 사회구조보다는, 자신이 ‘존중받을 만한’ 용모와 태도를 갖추지 못한 데 있다고 생각하게 될 것이다.

그러나 흑인들이 바지를 좀 더 올려 입고, 한국계 미국인들이 특유의 영어 억양을 고치려고 더 노력하고, 여성들이 가슴을 최대한 가리려고 하고, 동성애자들이 좀 더 이성애자처럼 행동하려고 한다고 해서, 사회구조와 문화적 차원에서 작동하는 인종차별이나 성차별, 성소수자차별이 없어질 리는 없다.

애초에 중산층 고학력 백인 이성애 남성의 외모와 태도를 기준으로 삼아, 거기서 벗어나는 복장과 외모를 ‘존중받을 수 없는 것’으로 자리매김하려는 발상 자체가 차별적이지는 않은가? 자신의 정체성을 최대한 부정해야 얻을 수 있는 존중은 과연 존중이긴 한가?

많은 사람들이 규칙을 가치중립적이고 객관적이며 편견으로부터 자유롭다고 여기는 경향이 있다. 어떤 사람들은 이미 편향되어 있는 규칙이 가져오는 수많은 역효과들을 보고서도, 규칙 자체에는 나쁜 의도가 없었을 것이라며 규칙을 방어하기도 한다. 규칙 중의 일부라도 무너지면 사회체제나 질서가 아예 무너질 것이라고 공포감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은 것 같다.

그러나 모든 규칙은 완전히 중립적일 수 없는 몇몇의 불완전한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며, 의도적이건 의도적이지 않건, 고려되지 않거나 고려할 수 없었던 일부의 사람들을 배제하기 마련이다. 모든 민주주의 사회가 보다 나은 규칙을 만들어내기 위해 구성원들의 끝없는 토론과 숙의를 거치는 이유이다.

이번 연말에는 가정이나 학교, 교회, 직장 등에서 명시적 암묵적으로 작동하는 수많은 불공정한 규칙들을 어떻게 개선해나갈 수 있을지 구성원들의 이야기를 듣는 시간을 가지면 어떨까?

<김성준 콜로라도대 정치학과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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