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글 쓰는 즐거움

2018-12-17 (월) 양지승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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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쓰는 즐거움

양지승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

하버드 대학교 졸업생들에게 하버드에서 배운 것 중 가장 의미 있는 것이 무엇인지 물었더니 상당수가 글쓰기라고 대답했다는 기사를 며칠 전 온라인에서 접했다.
굳이 하버드 학생들까지 가지 않더라도 글쓰기의 중요성은 누구에게나 평생 따라다니는 것 같다. 딱히 학술적인 글쓰기가 아니더라도 구직 활동에 필요한 자기소개서에서부터 소중한 사람에게 쓰는 편지나 카드에 이르기까지 생활에서 짧고 긴 글쓰기는 사실 살아 있다면 숨쉬기처럼 이어진다.
내 경우에는 직업상 끊임없이 논문을 읽고 써야 하지만, ‘젊은 시각 2030’ 칼럼을 쓰는 건 논문 아닌 글을 쓸 수 있는 특별한 기회였다. 논문에만 치일 것 같았던 조교수 생활 동안 개인적인 온라인 공간에서 두서 없이 주절거리는 대신 5주에 한번씩 이번에는 무엇에 대해 써볼까 하고 짬짬이 고민했던 칼럼쓰기는 사실은 남들 모르게 조용히 시작했던 취미생활과도 같았다.
신문에 글을 쓰며 ‘남들 모르게 하는 조용한 취미생활’이라는 것이 다소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요즘 20-30대는 사실 종이 신문을 잘 읽지 않는다. 온라인상에서 뉴스피드를 읽는 것이 더 익숙하기 때문이다.
조교수 생활도 이제 막바지에 다다르고 있다. 그 사이 자연스레 나이도 들었다. 돌아보면 칼럼쓰기를 비밀스런 취미생활(?) 일 것으로 혼자 생각했던 것은 정말 어이없는 발상이었다. 첫 글부터 여러 주위 선배들로부터 ‘글 잘 읽었다’는 인사를 받았다.
글을 통해 좋은 인상을 받았다는 어떤 분은 아들을 소개시켜 주고 싶어 하기도 했다. 그런 가하면 또 다른 의미에서 더 일을 구상해 보자는 이메일을 받았던 적도 있다. 세탁소에 옷을 맡기기 위해 갔다가 업소 여주인이 나를 알아봐서 몸 둘 바를 몰랐던 경험도 있다.
몇 주에 한번씩 칼럼을 구상하고 쓰는 동안, 학교와 집만 오가며 항상 정신없었던 지난 조교수 연구생활이 덜 무료했다. 실생활과 거리가 멀기만 한 연구 주제들 속에 매몰되지 않고, 가끔 삶의 다른 부분에 대한 생각들도 하면서 지낼 수 있었다.
글을 쓴다는 것은 소수이든 다수이든 누군가 글을 읽을 독자를 고려한다는 것이며, 그 과정을 통해 내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고 돌아보는 행위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생각을 적절한 언어로 표현하는 즐거움을 느끼는 행위이니 감히 인간의 내면에 있는 근본적인 쾌락의 대상이 아닌가 싶다.
사진 한 장으로, 혹은 5줄 내의 짧은 말로 감성을 표현하는 것을 즐기는 요즘 시대에 신문 지면은 특별한 공간이다. 내게는 고급스러운 쾌락의 공간이었다.
독자들도 신문에 글을 쓰는 즐거움을 누려보기를 바란다. 꼭 신문 지면이 아니더라도 기회 닿는 대로 글 쓰는 즐거움을 누린다면 삶이 더욱 풍요로워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양지승 매릴랜드대 교육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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