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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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창] 결핍과 감사

2018-12-12 (수) 12:00:00 김영미(월넛크릭한국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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벽이나 책상에 달력을 두지 않고 구글 캘린더로 일정을 관리하다 보니 12월, 일년의 마지막 달 느끼는 감회가 점차 줄어든 듯하다. 단지 현란한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한 해가 저물고 있음을 실감하게 된다. 편리함이 애틋함을 대체하고 있다고 느끼는 건 이뿐만이 아니다. 성탄인사와 축하인사를 나누다 보면 애틋한 말 한마디, 그 사람을 생각하며 고민하고 써내려간 손글씨보다는 복사와 붙이기 기능을 이용해 몇 번의 손놀림으로 재빠르게 예의를 표시하게 되었다. 모든 것이 흔해지고 풍족해지고 결핍이 결핍된 사회를 살아가고 있다.

반추해 보면, 넘치는 풍족은 반드시 축복이라고 단정지을 수는 없는 것 같다. 가장 맛있게 먹은 김밥은 어린 시절 소풍 가는 날 엄마가 정성스레 싸준 김밥이 아닌가 싶다. 소풍날 비가 올까봐 걱정하며 잠자리에 들고, 긴 거리를 걸어서 가고 나서 맛있게 친구들과 함께 먹던 김밥의 그 소중한 맛은 김밥##, 김밥**처럼 동네를 가득 채운 분식집에서 공장처럼 찍어내던 김밥 맛과는 비교가 안되는 것이었다.

슬픈 일이지만 지나친 풍족함은 우리의 기대와 감사를 앗아간다. 너무나 바라던 한 개를 가졌을 때의 그 소중함과 각별함은 여러 개를 지니는 순간 금새 사라져 버리는 것처럼 말이다. 결핍을 통해 소중함을 배우고 결핍을 통해 더 큰 감사를 느끼는 순간이 더 많은 건 왜일까. 언젠가 자녀 뒷바라지를 충분히 못해준 것에 자책하는 부모를 만난 적이 있다. 나는 역으로 아이에게 모든 것을 공급해주는 풍족한 환경이 자녀교육에 최적은 아니라고 설명해 주었다.

자녀 성공의 필수요건인 동기유발이나 Grit(끈기)이라는 측면에서 보면 다소 부족한 환경이 오히려 바람직하다. 다소 부족함을 느낀 후, 성취했을 때의 감격과 감사함을 느껴본 사람이라면 자녀에게 독이 될 정도의 풍족함보다는 의도적일지라도 약간의 결핍을 만들어 주는 것이 어떨까. 또한 다른 결핍을 느끼고 있는 주변사람들을 돌아보며 그들을 통해 감사를 배우고 함께 감사함을 공유하는 경험이야말로 정말 우리의 삶을, 우리의 마음을 한없는 풍족함으로 채울 수 있을 것이다. 올해도 물질의 풍족함보다는 마음의 풍족함과 감사가 넘치는 따뜻한 연말연시가 되길 기대해본다.

<김영미(월넛크릭한국학교 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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