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수필마당] 점점 작아지는 내 인생

2018-12-12 (수) 김옥교 칼럼니스트
작게 크게
어제 밤 '좋은 나무 모임' 연말 파티에 참석하고 나서 돌아오는 길에 나는 처음으로 밤에 운전 하는 것이 편안치 않고 좀 버거운 것을 느꼈다. 스쳐 지나가는 건물이나 길이 익숙치 않고 생소한 것 같으며 약간 불안한 감을 떨쳐낼 수 없었다.

그날 밤 나는 잠을 설쳤다. 내가 아무리 남보다 젊음을 유지하고 있다고 남들이 말해주어도 역시 나이는 속일 수 없나보다. 늙는다는 것은 모든 것이 점점 약해지거나 나빠지거나 축소된다는 것을 새삼 절감할 수 밖에 없었다. 육신적으로는 귀가 점점 나빠져서 텔레비전 볼륨을 더 크게 올리거나 낮에는 그런대로 괜찮아도 밤에는 침침해 지는 눈을 아무리 비벼 보아도 눈이 삼빡해지지 않는다.

이도 점점 약해져서 며칠 전에 브릿지를 새로 했다. 아직 틀니를 하진 않았지만 이것도 얼마나 더 견딜지 알 수 없다. 내가 제일 내 몸둥이 중에 자랑할 부분이 있다면 튼튼한 두다리였는데 얼마 전부터 왼쪽 무릎이 약해져 가는 것을 느낀다. 이젠 슬슬 계단은 피해 다닌다.


내가 매일 아침에 하는 운동 중에서 다리를 힘껏 올리는 운동이 있는데 그것도 예전만큼 높이 올라가지 않는다. 또 한쪽 다리로만 서서 하는 '훌라밍고'라는 운동이 있는데 이 운동은 전신의 발란스를 잡아주어서 아주 노인에게 유익하지만 이 운동도 아주 신경을 온통 집중하지 않고는 잘못하다가는 넘어지기 일보 직전이다. 이렇듯 언제 부턴가 내 몸의 일부분들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고 점점 약해지는 것을 느낀다. 이 느낌은 나를 불안하게 하고 또 서글프게 만든다. '아!나도 결국은 늙어가고 있구나! ' 하는 것을 요즈음은 매일처럼 깨닫게 된다.

결국 인간이란 동물은 매일처럼 조금씩 약해지고 줄어들고 축소 돼가는 것을 부인할 수 없다. 키도 많이 줄었다. 바지를 새로 사서 입어 볼 때면 알게 된다. 언젠부터인가 식사량도 조금씩 줄어 들고 있다. 이런 문제는 다 내 육신적인 문제다. 그런데 물리적인 문제도 있다. 나는 한때 크고 좋은 집과 넓고 아름다운 정원과 이름 있는 좋은 차도 골고루 다 타보았다. 남편도 능력 있는 남편을 만나서 미국에 온 후로는 한번도 일도 해보지 않았다. 말하자면 팔자 좋은 사모님이었다. 골프도 치고 테니스도 마음껏 쳤다. 그런데 이제는 옛날 집의 삼분의 일 정도인 1300 스퀘어가 조금 넘는 작은 집에 살고 있다. 또 한때는 나도 밀리네어였던 적도 있었지만 지금은 벌지 않고 맨날 쓰고만 사니 있는 돈도 자꾸만 줄어들 수 밖에 없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불행하다고 해야하는데 그건 그렇지 않다. 집의 크기나 자동차의 종류나 내가 가진 보석들로 행복하던 시절은 다 지나갔다. 이젠 건강하고 먹고 살만한 돈만 있으면 만사 오케이다.

사람들은 나만 보면 왠 에너지가 그렇게 넘치냐고 묻는다. 그 이유는 나는 아주 규칙적인 생활을 한다. 지금 91세인 우리 언니도 마찬가지다. 언니나 나나 같은 시간에 일찍 자고 같은 시간에 식사를 한다. 운동도 같은 시간인 아침에 한다. 아침과 저녁엔 소식을 하고 점심엔 넉넉하게 한식으로 밥을 먹는다. 저녁엔 약 다섯시 전에 치즈 한쪽이나 사과 반쪽, 정 배가 고픈 날은 우유 한잔을 먹는다.

나는 비교적 건강하지만 몇년 째 당뇨병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비교적 잘 관리를 하는 편이다. 늘 비슷하게 소식을 하고 일찍 자고 운동을 병행하면 아침에 재보는 혈당 관리가 비슷한 숫자로 나온다. 아침엔 120이 넘지 않도록 하고 밤에 자기 전 140을 넘지 않도록 관리한다. 가끔 의사에게 갈 때마다 '아주 원더풀!'이란 칭찬을 듣는다. 나는 결코 오래 사는 것을 원치 않는다. 건강하게 살 수 있다면 그보다 축복은 없겠지만 치매나 중풍 같은 병을 가지고 오래 사는 사람들을 보면 그건 축복이 아니라 저주라는 생각이 든다.

나는 부자는 아니지만 잘 살아왔고 지금도 잘 살고 있다고 자부한다. 자식들도 다 제몫을 하고 산다. 다들 제 집 한채씩 지니고 이 베이 지역에서 중산층으로 살고있다.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살아야 한다. 내가 이 나이가 되도록 글을 쓸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며 행운이다. 사실 글을 쓴다는 것은 자신의 영혼과의 끊임 없는 싸움이며 또 한편 자신을 다독일 수 있는 위로의 통로이기도 하다. 내가 우울해질 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는 것은 굉장한 위안이다. 시 한편이나 수필 한편을 쓰면 다시 살고 싶은 욕망과 힘을 얻는다. 사실 늙어가며 욕망도 줄고 호기심도 줄고 시샘 같은 마음도 시들해진다. 오직 아름다운 영혼만 간직하고 싶다.

창 밖으로 보이는 나무들이 이젠 헐벗은 모습으로 바람에 흔들리고 있다. 아름답게 채색으로 물들었던 입새들이 거의 다 떨어져 땅에 딩굴고 있다. 이 세상에서 아무 것도 영원한 것은 없다. 우리 인간들도 어느날 다 이처럼 땅에 떨어져 바람과 함께 스러져 가리라. 그래서 우리 모두는 오늘 이 하루, 이 순간을 잘 살아야 한다. 이왕이면 아름다운 영혼을 가지고 살다가 어느날 훌쩍 떠나가고, 비록 지금 내 육신은 줄어들고 작아지더라도 늘 아름다운 사람으로 기억 됐으면 하는 바램이다.

<김옥교 칼럼니스트>

카테고리 최신기사

많이 본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