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크리스마스카드

2018-12-10 (월) 이보람 adCREASIANs 어카운트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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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카드

이보람 adCREASIANs 어카운트 매니저

연말이다. 연례행사처럼 크리스마스카드 쓰기를 시작해본다. 요 며칠 많이도 썼다. 업무적인 편지가 훨씬 많았지만 어쨌든 오랜만에 손편지를 쓰니 감회가 새롭다. 글쓰기는 좋아하지만 키보드가 더 익숙해서 인지 펜을 든 손이 영 어색하다. 안 쓰던 손가락 근육들을 쓰려니 손가락 마디마디가 아프고 쑤신다. 일 년에 한 번이니 하지 아니면 손이 남아나지 않을 것 같다.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는 일은 꽤 많은 노동을 요했다. 카드를 직접 준비해야 하고 우표도 사 와야 한다. 어린 후배들에게는 귀엽고 깜찍한 카드를, 점잖은 어르신들을 위해서는 화려하지 않은 수수한 카드로 준비했다. 거기에 잘 써지는 펜으로 꾹꾹 메시지를 적는다. 글씨가 밉지는 않은지 신경이 쓰이고 여러 장을 쓰자니 내용도 중복되지 않게 하려 노력한다.

그리고 편지를 받는 상대를 떠올리며 할 이야기를 떠올려야 했다. 추억이 많은 이들이라면 이 과정이 쉬웠지만 얕은 관계, 특히 업무로 엮인 이들에게 쓸 때는 퍽 어려운 일이었다. 얼굴도 모르는 사람도 있었기 때문이다.


여차저차 편지를 다 쓰면 우표를 붙이고 주소를 적는다. 주소를 찾고자 메일을 뒤적거리고 받았던 명함을 들춰보며 상대방의 사는 곳을 다시 한번 확인한다. 지인들에게 이를 빌미로 문자도 보내보고 오랫동안 연락 안 했어도 이 핑계로 멋쩍게 인사도 해본다. 이사를 한 사람도 있고 이직을 한 이들도 있었다.

그렇게 또 서로 사는 이야기를 주고받는다. 주소를 통해 사는 곳을 살펴보며 ‘아, 이 분 사는 데는 지금 엄청 춥겠구나. 아, 하와이는 캘리포니아만큼 따뜻한가?’ 따위의 생각도 곁들이기 마련이다. 그리고 나와의 지리적 거리를 가늠하여 ‘이 편지가 언제쯤 가 닿겠구나’ 하는 계산도 하게 된다.

마지막으로 우표를 부착하며 이런 손편지를 받으면 얼마나 감동스러울지 그 찰나의 순간과 감정도 잠시 상상해본다. 이렇게 한 장 한 장 써 내려 가다 보니 벌써 스무 장이나 썼다. 하루에 업무 이메일 스무 통은 눈감고도 쓰는 데 목표치의 반절인 스무 장의 카드를 쓰는데 반나절이 훌쩍 넘어 버렸다.

별 것 아닌 일처럼 보이지만 누군가를 생각하며 이런 자질구레한 일들이 총 결합된 손편지를 쓴다는 것은 정성이 많이 들어가는 일이라는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 사람에게 카드를 쓰는 그 순간만큼은 온전히 그 사람만을 위해 그 몇 분을 쓴다. 누군가 먼 타주에서 혹은 지구 반대편에서 단 몇 분이라도 온통 나로 가득한 시간을 보내고 있다는 사실은 황홀하다. 내게는 그렇다.

올해는 내게 몇통의 크리스마스카드가 올지 모르겠지만 그 사람의 정성에 대해 더욱 고마운 마음을 가져야겠다. 그 사람도 나만을 위해 기꺼이 이러한 수고를 하고 정성을 쏟았을 테니까 말이다.

이런 편지를 전하는 데 단 몇십 센트, 국제우편이라도 1달러밖에 지불하지 않아도 되는 우정 시스템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우정을 지키라고 이름도 우정인 것 같은 우정국은 이 카드들을 안전하게 잘 배달해줄 것이다.

매년 거르지 않고 카드를 쓰는 나 자신도 조금 칭찬해주었다. 디지털 시대에 이렇게 아날로그적인 편지 쓰기라니. 언젠가는 지쳐 떨어지겠지 싶다.

박정현의 노래 ‘편지할게요’에서 편지 쓰기는 글씨로 사랑을 만드는 길이요, 소리 없이 내 마음을 채우는 일이라고 했다. 오늘 밤도 소리 없이 내 마음을 채웠더니 든든한 기분마저 든다. 이렇게 또 배운다.

<이보람 adCREASIANs 어카운트 매니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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