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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자투고] 딸의 결혼식과 허전함

2018-12-01 (토) 12:00:00 방무심/프리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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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의 결혼으로 인해 하와이에서 일주일을 보내려 말로만 듣던 '와이키키' 바닷가에 여장을 풀었다. 따가운 햇볕에 습기를 머금은 날씨는 몇십 년 '캘리포니아'기후에 익숙한 우리에게 더욱 이국적인 풍경을 느끼게 해 주었다.

다음 날 저녁 사돈집과는 두 번째의 만남이니 낯설지 않아 좋았고, 저녁 식사 자리에서 초면인 여러 사람과의 대화도 술잔과 함께 깊어갔다.

커튼 안으로 햇살이 비치고 가깝고도 먼 바닷가에는 파도가 일렁이는 아침이다. 오늘의 리허설을 위해 한시간 반가량 떨어진 생소한 곳으로 가는 길은 차창에 부딪히는 빗줄기, 주위를 둘러싼 뾰족한 산봉우리를 휘감은 안개 속의 풍광에 황홀함으로 빠져든다. 바닷가 쪽으로 도착하니 많은 닭들이 천혜의 자연환경 속에서 평화롭게 무리 지어 다닌다. 그들은 '올개닉', '케이지 프리' 라는 말은 상상도 못 할 평생 자연에서 사는 금수저 닭이다.


내일 결혼식에 대한 장소를 둘러보니 예식장이나 호텔, 또는 골프장이 아닌 것이 생소하지만, 자연적이기도 하고 괜찮을 듯싶다. 나의 역할이란 신부 아버지로 딸과 팔짱 끼고 주례 앞에 가서 'I do' 하면 끝나는 간단하고도 허전한 일이다. 그렇게 몇 번의 예행연습은 잘할 수 있겠다는 생각에 도움이 되었다.

다음날 이른 아침에 출발하여 어제 만났던 길을 다시 찾으며 마음을 가다듬었다. 식장은 5분 정도 계단을 내려가면 바로 시원히 펼쳐진 바다 앞에 단상과 하객의자들이 놓여 있다.

무료한 시간이 흐르며 150여 명의 하객이 계단 아래에 모여있고 나 혼자 발코니에서 초조히 딸을 기다린다. 어디다 숨겨 놓았는지 30분 정도 지난 후에 드디어 신부가 등장해서 팔짱을 낀 채 조심스레 계단을 내려 바닷가 식장으로 내려간다.

33년 동안 함께한 나의 딸을 넘겨주는 결혼식은 이렇게 허무한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더 슬펐던 일은 '파티' 가 시작되었을 때 '수잔 리' 나와서 남편과 춤추라는 아나운서의 우렁찬 목소리였다. 나의 가슴에 구멍이 뚫린 기분이었다. 시집가면 남편 성을 따는 것은 이곳의 자연스러운 관습인데도 스피커에서 나온 '수잔 리'라는 외침은 왠지 식구를 잃은 듯한 섭섭함으로 다가왔다.

<방무심/프리몬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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