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보이지 않던 손

2018-11-26 (월) 최진희 펜실베니아 주립대 성인교육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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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이지 않던 손

최진희 펜실베니아 주립대 성인교육학 박사과정

자전거 사고로 팔이 부러졌다.

급한 마음으로 언덕을 질주하다가 자전거가 옆으로 넘어지며 왼팔의 뼈가 부러졌고, 다음날 어쩌면 수술할지도 모른다는 의사의 통보를 받았다.

다행히 머리는 멀쩡해서, 사고가 나자마자 바로 지도교수님께 “자전거 사고로 챕터 마감은 미뤄질 거 같습니다”는 연락을 했다. “허 참, 멀쩡해도 힘든데, 가장 바쁠 때에 그렇게 되어서 어떻게요.” 어느 교수님의 걱정 어린 한마디가, 메아리 되어 마음에 돌아다녔다.


왼손이 움직이지 않을 때, 생활은 반쪽만 천천히 굴러갔다. 가방은 오른 쪽에만 메고 학교를 가고, 토스트에 땅콩버터를 펼쳐 바를 수 없었고, 설거지는 한 손에 수세미를 들고 한번 돌리고 뜨거운 물로 소독했다. 추운 날에도 외투의 반쪽은 어깨에 걸칠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왼손이 멈추자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수많은 손들이 나를 위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소식을 듣고 바로 병원에 찾아온 친구는, 무거운 내 가방을 자신의 어깨에 짊어지고 본인의 사물함 열쇠를 주었다.

사정상 다른 학교에 계신 첫 지도 교수님은 가까운 교회 지인에게 연락해 뼈에 좋은 우유와 요거트를 사도록 도와주셨다. 함께 차를 타고 가며 짧게 나눈 대화에서 그분의 부모님이 현재 알츠하이머를 앓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삶의 무게가 겹겹이 누르고 있음에도 “이 시간을 통해 가르치실 것이 무엇인가요?” 신실한 질문을 던지는 그분의 영혼의 숨결은, 아픔을 초월한 삶의 자세와 감사의 감각을 흔들어 깨워 주었다.

우연히 만난 예전 하숙집의 아주머니는 그 마음의 넉넉함을 따라 귀한 김치찌개와 일주일 분의 요리를 잔뜩 주셔서 냉장고는 이미 포화상태가 되었다.

파트타임으로 나가는 도서관에서 함께 일하는 학부생들에게서 온 손 편지는 평소 무심하게 나가는 일터에 대한 애정을 솟구치게 해주었다.

이제는 천천히 걸으며, 가을이 한 해 동안 준비한 노랗고 빨간 단풍 양탄자를 즈려밟고 산책하듯 가볍게 학교에 간다.

왼팔은 여전히 움직이지 않는데, 이전에는 보지 못했던 수많은 손들의 움직임이 보이기 시작하면서 도리어 영혼의 감각이 깨어난다.


“아프지 않으면 드리지 못할 기도가 있다” - 유학 오기 전에 교통사고로 한달 간 병원에 누워있었을 때 읽었던 미우라 아야꼬의 단시를 뒤적인다. 그때도 뼈가 부러지고 어느 것 하나 내 마음대로 굴러가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지금 졸업을 준비하고 있고 그런 나를 돌아보며, 삶은 내 육체와 노력으로만 지탱되어 온 것은 아님을 고백하게 된다.

내가 다 알지 못하는 수많은 손들이 나를 감싸 안고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해 주었다. 그러니 눈앞의 손익으로 현재를 판단하지 않게 된다.

보이지 않는 더 큰 손이 삶을 둘러싸고 있는 걸 경험하는 바로 지금이 평소에 드리지 못한 그 감사의 기도를 드려야 하는 때인 거 같다.

<최진희 펜실베니아 주립대 성인교육학 박사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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