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핏줄투표’ 가 최선일까

2018-11-21 (수)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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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6일 중간선거는 20년만의 한인 연방하원의원 탄생이라는 의미 있는 결과를 한인사회에 안겨줬다. 당초 두 명의 한인이 동반 당선될지도 모른다는 기대가 높았지만 아쉽게도 뉴저지 연방하원 3지구에 출마한 앤디 김 한 명의 당선으로 마무리됐다.

선거 당일 밤 캘리포니아 39지구에 출마한 공화당 영 김은 당선이 유력해 보인 반면 앤디 김은 힘들 것 같은 분위기였다. 그런데 결과는 앤디 김의 당선, 영 김의 낙선이었다. 끝날 때까지는 끝난 게 아니라는 야구의 격언은 선거에도 그대로 적용된다.

공화당 영 김 당선이 기정사실화 되던 시점에 대부분 미국언론들은 이곳을 여전히 경합으로 분류했으며, ‘폴리티코’ 같은 정치전문매체는 ‘민주당 유력’으로 전망하기까지 했다. 폴리티코는 여러 예측모델을 토대로 이같이 전망한 것인데 그대로 맞아 떨어졌다. 한인사회는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린 것이다.


39지구의 한인 유권자는 1만6,000명 정도로 추산된다. 연방하원 명맥 잇기 열망이 더해지면서 한인사회는 영 김 후보를 적극 지원했다. 정확한 숫자는 추후 조사를 통해 드러나겠지만 한인유권자들의 절대 다수가 영 김 후보에게 표를 던졌을 것으로 추정된다. 그럼에도 김 후보는 패했다.

주류 표심을 확실히 잡지 못하는 한, 지역구가 넓고 유권자가 수십만에 달하는 연방단위 선거에서 승리하기는 힘들다는 것을 39지구 선거결과는 깨우쳐 주고 있다. 그래서 뉴저지 앤디 김의 승리가 한층 더 돋보이는 것이다. 그의 지역구 내 한인 유권자는 300명 정도에 불과하다. 한인표의 지원이 전혀 없는 ‘악조건’ 속에서 그는 보란 듯이 현역을 쓰러뜨리고 당선됐다.

이번 중간선거 결과를 보면서 한인후보라고 무조건 표를 주는 게 과연 바람직한가라는 근본적 질문을 던져보게 된다. 한인사회의 존재감이 미미했던 당시 한인들은 정치인 탄생을 통해 자부심을 느끼고 존재감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 한인사회는 그런 단계를 넘어설 정도로 크게 성장했다. 한인정치인의 탄생은 여전히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그것은 자연스러운 선택의 결과여야 한다.

정치, 특히 선거는 후보가 자신의 소신과 정책을 제시하고 유권자들의 선택을 받는 절차이다. 유권자들은 어느 후보의 생각이 평소 나의 가치관과 부합하는지, 그리고 어떤 정책과 공약이 나에게 이익이 될지를 잘 살핀 후 후보를 골라야 한다. 그 어느 때보다 정치적 양극화가 극심한 시기에는 더욱 그렇다. 이민과 세금 등은 유권자들의 현재, 그리고 미래의 삶과 직결되는 핵심적 사안들이다.

연방과 달리 시의원 등 로컬선거에서는 한마음으로 한인후보를 밀어주자는 캠페인이 여전히 유효성을 가진다. 로컬선거는 연방이나 주와 달리 당파성이 거의 없고, 정치가 커뮤니티 이슈를 중심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로컬에서는 한인정치인들이 많이 탄생할수록 커뮤니티의 이익을 지키는 든든한 방패막이가 될 수 있다.

한인정치인의 탄생은 커뮤니티의 자부심을 높여준다. 후세들에게 좋은 롤 모델이 될 수도 있다. 하지만 남을 의식한 것이라면 지나친 자부심은 조금 우습다. 다른 커뮤니티는 이런 성과에 우리가 기대한 만큼의 관심을 보이지 않는다.

같은 아시아계인 인도커뮤니티의 경우 이미 여러 명의 연방의원과 주지사, 그리고 마이크로소프트와 펩시 등 굴지 기업의 CEO들까지 무수히 배출했지만 우리는 그리 대단히 여기지 않는다. 사실 별 관심도 없다. 그냥 그런가보다 할 뿐이다. 그러니 한인정치인을 만들어내 다른 커뮤니티에 존재감을 보여줘야 한다는 강박은 가질 이유도, 필요도 없다.

이제는 한인이니까 무조건 뽑아줘야 한다는 ‘핏줄투표’에서 벗어나 내 생각과 형편을 가장 잘 대변해 줄 후보를 선택하는 ‘가치투표’를 해야 한다. 이런 의식이 정착될 때 한인 정치지망생들의 자생력도 더 커질 수 있다. 진정한 커뮤니티의 정치력은 한인들이 각자의 소신에 따라 ‘빠짐없이’ 투표를 하는데서 나오는 것이지 정치인 한두 명 더 당선시킨다고 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다.

<조윤성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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