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아침 햇빛과 저녁 햇빛

2018-11-06 (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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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일요일 새벽 2시를 기해 올해의 서머타임이 끝났다. 애리조나와 하와이, 2개 주를 제외한 미 전국에서 일광절약시간제가 해제되고 표준시간제가 재개된 것이다. 아이들의 새벽 등교길은 밝아지지만 직장인들의 퇴근길은 어두워진다.

1700년대 미국의 벤자민 프랭클린이 양초를 절약하기 위해, 1800년대 뉴질랜드의 조지 허드슨이 곤충 채집 시간을 늘리기 위해 착안했던 ‘서머타임’의 제도화를 추진한 것은 영국의 건설업자 윌리엄 윌렛이었다. ‘일광의 낭비’라는 책자를 발간하기도 한 그는 의회에 여름 긴 날의 햇빛을 최대한 활용해 생산성을 늘려야 한다고 역설했다.

영국의회가 말씨름을 거듭하는 동안 서머타임을 행동에 옮긴 것은 독일이다. 1916년 세계 1차 대전 중 에너지 절약을 위해서였다. 곧 영국과 다른 참전국들이 뒤따랐고 1918년 미국도 7개월의 의무적 일광절약시간(Daylight Saving Time) 조항이 포함된 표준시간제를 도입했다.


미국의 서머타임은 굴곡도 심했다. 연방의회는 시작 다음해에 DST 의무조항을 폐지하고 각 주에 선택권을 주었다. 캘리포니아는 두 차례나 주민발의안으로 시행을 시도했다 실패한 후 1949년에야 4월부터 9월까지 일광절약시간을 시행하는 프로포지션 12 통과에 성공한다. 그보다 앞서 프랭클린 루즈벨트는 2차 대전 중 ‘전쟁 시간(War Time)’으로 명명한 연중 서머타임을 시행했으며, 비상 연중 서머타임은 닉슨 시절 석유파동 때도 11개월 동안 시행되었다.

주마다 서머타임 기간이 제각각인 혼선이 심해지자 1966년 ‘4월 마지막 일요일에서 10월 마지막 일요일’로 통일한 전국 ‘동일시간제’ 연방법이 발효됐다. 그 후에도 한 두 차례 더 연장되었던 서머타임 기간은 2005년부터 현재의 ‘3월 둘째 일요일에서 11월 첫 일요일까지’가 시행되고 있다.

“봄엔 앞으로, 가을엔 뒤로(Spring forward, Fall back)”란 관용구가 생겨났을 정도로 시계를 앞당겼다 되돌리는 두 차례의 시간 변경은 미국인의 연중행사이지만, 매년 ‘앞당기는 거야? 뒤돌리는 거야?’ 아직도 헷갈리는 사람이 많은 번거로운 부담이다.

오늘 투표에서 판가름 날 캘리포니아의 프로포지션 7은 이 부담스런 시간변경을 중단시키자는 제안이다. 서머타임의 연중 시행이 최종목표인데 도달까지의 절차는 복잡하다.

정확한 내용은 69년 전 통과된 프로포지션 12를 폐지하고 주의회에 새 시간제를 정할 권한을 주는 것이다. 프로포지션 7이 통과되면 주의회는 서머타임 연중 시행안을 3분의2 찬성으로 통과시킬 테지만 끝이 아니다. 그 안을 연방의회가 승인해주어야 시행할 수 있는데, 그게 부지하세월이 될 수도 있다. 지난 봄 통과된 플로리다의 서머타임 연중 시행안도 아직 연방의회의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다.

봄가을의 시간 바꾸기가 심장마비 위험과 교통사고를 증가시킨다는 잇단 연구결과 덕인지 여론조사에선 58% 대 21%로 지지가 높지만 연중 서머타임 시행엔 반대도 만만치 않다. 어두운 퇴근길을 싫어하는 직장인들 못지않게 자녀들의 어두운 새벽 등교를 우려하는 부모들도 많아서다. 연중 서머타임으로 바뀌면 1월초 LA에선 오전 8시가 다 되어도 해가 뜨지 않는다.

이미 8개월 동안은 서머타임이 실시되고 있는 중에서 나온 프로포지션 7은 겨울 넉달 동안 아침 햇빛과 저녁 햇빛 중 어떤 쪽을 더 원하는가에 대한 선택이라고도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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